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에게해의 진주

설리숲 2018. 1. 22. 21:43


   집착의 사랑, 칼립소

 

아틀라스의 딸 칼립소는 그리스어로 감추는 여자라는 뜻이다.

칼립소는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섬에 살았다. 그 섬에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들었다.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였다. 트로이전쟁이 끝나고 귀향길에 올랐던 오디세우스는 포세이돈의 미움을 사 강풍을 만나 표류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다. 부하를 전부 잃고 혼자 살아남아 섬에 당도하였다.

추레한 매골에 남루한 옷을 걸친 거지꼴이었지만 칼립소는 한눈에 그가 영웅이요 사내대장부임을 알았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만이 삶의 전부이던 메마르고 고독한 칼립소에게 사내는 신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슬픈 운명이기도 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깊이 사랑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가슴에는 고향에 있는 아내 페넬로페가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여인을 사랑하는 걸 안다는 건 슬프고 아픈 일이다. 그러나 칼립소는 그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의 영혼은 절박한 고통으로 하얗게 표백되어 갔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7년이나 붙잡아두었다. 그 세월동안 오디세우스는 바다에 나가 멍하니 서서 고향과 아내, 아들을 그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우스의 명을 받은 헤르메스가 칼립소를 찾아왔다. 그리고 신들의 명령을 전했다.

 

 오디세우스를 놓아주어라.

 

칼립소는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안고 밤낮으로 오열했다. 그러나 신들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고통의 시간이 지난 후 마음을 다잡은 칼립소는 한 남자를 잡아두고 차지하려는 집착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오디세우스를 보내주기로 마음을 먹고 그에게 뗏목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통나무를 무어 차차 뗏목이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칼립소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고통의 나날이었다. 칼립소의 간절한 마음은 아랑곳없이 뗏목은 완성되었다.

뗏목에 올라탄 오디세우는 한 점 미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가슴엔 고향의 아내만이 가득했다.

칼립소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고독하고 메마른 여인이 되었다. 너무나도 강렬하고 짧은 행복이었다. 그러나 슬펐지만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것이 기꺼웠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지만 입가에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비로소 사랑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칼립소에게 사랑은 아름다운 꽃밭이 아니었다. 풀 한포기 나지 않는 황량한 사막이었다. 그녀의 사랑의 깊이만큼이나 그녀의 고통도 무거웠고 그 사랑의 크기만큼 슬픔도 컸다. 그 폭풍 같은 슬픔 뒤에 깨달은 건 나의 행복을 붙잡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그의 기쁨을 헤아리는 게 사랑임을.




 

 에게해의 진주, 페넬로페

 

페넬로페는 스파르타의 왕 이카리오스의 딸로 그리스어로 원앙이란 뜻이다.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그녀를 차지한 행운아는 오디세우스였다. 그러나 그 행복은 너무 짧았다. 결혼하고 얼마 안되어 트로이전쟁이 일어나 그는 아내를 두고 전쟁터로 나갔다. 10년이란 긴 전쟁이 끝나고도 고향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다시 10년이 걸렸다. 모두들 오디세우스가 죽은 것으로 알았고 그의 지위와 아내를 호시탐탐 넘보던 사내들이 페넬로페의 집에 드나들었다. 그 집의 하인들을 부리며 제가 주인이 된 듯 호기를 부렸다.

그러나 정작 페넬로페의 마음은 얻지 못했다. 페넬로페는 반드시 남편이 돌아올 것을 굳게 믿었다. 노골적으로 구애를 하는 사내들에게 페네로페는 혼자 남은 아버지께 수의를 짜 드리겠다고 하고 그것을 다 짤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페넬로페는 베틀에 앉아 수의를 짜기 시작했다. 낮에는 짜고 밤이면 다시 실을 풀었다. 수의가 완성되면 그들과 결혼을 해야 했다. 짜고 풀기를 반복하며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디세우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유명한 페넬로페의 베짜기는 세월이 가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일, 끝내 마치지 못하는 일이란 뜻이다.

베를 짜고 푸는 세월이 3년이 지나자 더 이상은 사내들을 속일 수가 없게 됐다. 이제 페넬로페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야 했다.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을 떠나 집으로 돌아올 때 아테나 여신이 양치기로 현신하여 그가 없는 동안의 궁전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100명도 넘는 귀족들이 그의 자리와 아내를 차지하려고 갖은 술수를 부리며 궁전의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분노한 오디세우스는 당장 달려가 그들을 처단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테나 여신은 복수를 하려면 정체를 숨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지로 변장을 하고 궁전으로 갔다.

페넬로페는 새 남편을 정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었다. 수많은 구혼자들이 활솜씨를 겨루고 있었다. 페넬로페는 그 우승자와 결혼하게 돼 있었다.

사내들은 모두들 돌아가며 활을 쏘았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때 거지 하나가 나서며 말했다.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지금은 거지꼴이지만 예전엔 무사 흉내를 제법 내고 다녔지요.

경쟁자들은 비웃으며 저 건방진 거지놈을 당장 끌어내라고 외쳤다. 그때 텔레마코스가 나서서 그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자고 말했다. 거지는 능숙하게 활을 메겨 고리 속에 관통시켰다. 모두들 놀라 탄성을 지르고 구혼자들은 넋이 빠졌다. 이때 거지는 다시 한번 시위를 당겨 가장 집요하게 오디세우스의 자리와 페넬로페를 탐한 자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목구멍을 관통했고 경쟁자는 즉시 쓰러졌다.

나는 네놈들이 침범한 이 집의 주인이다! 나는 네놈들이 흥청망청 탕진한 재산의 주인이다! 나는 10년 동안 네놈들에게 수모를 당한 페넬로페의 남편 오디세우스다! 네놈들이 죽여 없애려고 한 텔레마코스의 아비다!

 페넬로페의 인고의 기다림이 막을 내렸다.

 


     베 짜는 페넬로페 : 핀투리키오 작 (1509년)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다. 오늘날 페넬로페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상징이 되었다.

유명한 폴 모리(Paul Muriat)는 그녀의 숭고한 사랑을 찬미하여 이 노래를 지었다. 우리는 이 곡에 에게해의 진주라는 이명(異名)을 붙였다.






폴 모리 : 페넬로페(Penel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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