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 남쪽지방으로 갈 때면 소백산맥을 넘게 되는데 단양을 지나 죽령을 넘는 길과 충주를 지나 이화령을 넘는 길이 있다. 이화령 코스로 갈 때마다 연풍(延豊)이라는 이정표를 보곤 했는데 그 이름이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다. 혹시 영화 <연풍연가>하고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괴산에 와서 지내게 되었다. 연풍이 괴산 땅임을 이제사 알게 되었고 감물에서 부르릉 차 시동을 걸면 속도를 높일 기회도 없이 다다르게 지근거리(至近距離)다. 전에는 아주 멀고 설어서 어쩌다 이정표로만 보게 되는 이방으로만 인식되었었는데 이렇게 가까운 이웃으로 두는 세월도 있는 것이다.
덩달아 이화령 고개도 멀지 않아서 친근해졌고 그러고 보니 문경도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해도 되게 가까운 동네가 되었다.
사람이나 땅 등 모든 것의 이름을 지을 때는 개가 무심하게 짖듯이 되는대로 짓지는 않을 것이다. 무언가 생각하고 그럴싸하게 지어내는 게 인간속성이니 이화령, 즉 한자로 梨花嶺이다. 우리말로 하면 배꽃재 혹은 배꽃고개인 셈이다. 바로 이웃한 새재, 즉 조령(鳥嶺)은 새도 넘기 힘들만큼 높고 험하다는 뜻에서 만든 이름이니 이화령은 배꽃과 관련이 있을까.
좀 찾아보니 그것에 대해 이렇다 할 명확한 자료는 없다. 예전에 이 곳에 배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화령이라는 이름이니 근거가 희박한 추측성 자료라는 느낌이 다분하다.
이쪽은 충청도 괴산 땅
이쪽은 경상도 문경 땅
어쨌든 아주 가까운 곳에 있으니 나로서는 주말인데 별다른 계획이 없거나 할 때면 뻔질나게 오르내릴 만한 고개다.
영남과 한양을 잇는 고개로 각광을 받았던 것은 새재였다. 교통이 발달된 지금은 새재가 아니고 이화령으로 그 중요도가 이전됐다. 새재는 자동차 도로로 하기엔 척박하여 보다 완만한 이화령으로 길이 뚫렸다.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넘어가고 3번 국도도 넘어간다. 대신 새재는 자동차가 아닌 도보여행 코스로 각광받는 관광지가 되었다.
이화령 휴게소
내가 예전에 다니던 길도 3번 국도였다. 처음에 도로를 개통했을 때 구절양장 꼬불꼬불한 험로인지라 이용차량이 많지 않고 꾸준히 불평불만이 제기되었다. 이에 민간투자사업으로 4차선으로 확충하고 터널을 뚫어 새로이 개통함으로써 비로소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연풍에서 터널을 빠져나가면 내리막길이고 거기는 문경 땅이다. 내리막길이 끝나는 지점에 게이트가 있었고 거기서 통행료를 받았다. 고속도로도 아니면서. 별수 없이 돈을 꼬박꼬박 내고 다니긴 했지만 어쩐지 유쾌하지 못했다. 여긴 내 땅이니 지나갈 테면 통행세를 내고 가라, 하는 지역텃세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2007년 건설교통부가 이화령터널을 인수하면서 통행료가 폐지되었다.
옛길은 자전거 여행의 요람이 되었다. 휴게소를 바라고 오르내리는 차들도 있다. 길 위에 가을이 깔렸다.
구불구불한 옛길은 지금은 자전거족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주말이면 자전거 탄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고갯마루의 휴게소는 명소가 되었다. 자전거가 아니라도 휴게소엘 가려고 일부러 차를 타고 가기도 한다. 거기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제법 볼만하다. 아, 아름다운 자연!
산에 오르면 고갯마루에 서면 늘 절감하게 되는 장엄한 자연의 위풍, 그리고 인간들의 조악함. 우리는 언제나 겸손하게 살 일이다. 위대한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깨우쳐 돌아오지만 돌아오는 순간 그 깨우침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불경하고 건방진 인간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이화령
물처럼 살고 싶어서
그대에게 흘러갔습니다
그 많은 밤길 지나서
그 많은 구비 다 지나서
쑥부쟁이 키작은 그대
그 맑은 그곳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사랑은
산정에서 구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산을 내려가는 물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늦은 소식 하나 안고
나 이제서야 물처럼 살고 싶어서
그대에게 흘러흘러 갔습니다
- 안상학
지난주는 아직이었는데 이번 주는 단풍이 어떨지 모르겠다.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 산자락의 계절을 몹시 보고프다. 그것도 이화령이라면 또다른 감상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아, 저 파란 하늘!
가을은 나를 미치게 한다.
안상학 시 위대권 작곡 강미영 노래 : 이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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