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게 사라진 마추픽추 같은 왕국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2천년의 까마득한 세월 저쪽 고대국가에 대하여 학계에서도 분분한 의견들이 있는 것 같다. 너무나 오래 전의 일이고 게다가 망한 나라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기 마련이니 후세 사람들은 서적에서 이따금 보이는 언급들에서 유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발해가 우리의 역사이듯이 이 나라도 우리의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다.
가야.
그중에서도 가장 흥성했던 국가는 대가야로 가야국 중에서 최후로 남았던 나라였다.
경북 고령이 대가야의 옛 터이며 고령군은 고령읍을 대가야읍으로 개칭했다.
경주처럼 대가야읍에도 고분들이 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거장들을 우리는 잘 알지만 대가야에도 악성이 있었다.
우륵.
국민학교 때부터 귀가 아프게 들어온 이름이지만 정작 그의 음악을 들어볼 수는 없다. 가야라는 나라의 기록조차도 미진하니 하물며 딴따라 음악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가야금을 만들었다는 것과 12곡의 음악을 만들었다는 단편적인 기록이 전부다.
대가야읍 곳곳에 가야금 형상의 조형물이 있다.
우륵박물관의 외관도 가야금 형상이고
박물관 뒤란엔 가야금제작체험공방이 있어 건물 주위에 오동나무를 건조하고 있다.
마을엔 가얏고길이라는 테마산책길이 있는데 뭐 이름만 그럴듯하게 붙였지 소개할만 한 길은 아니다.
가야금의 재료인 오동나무가 있다.
우륵
돌팍새 뿌리 내려 물먹은 오동나무에
명주실 가닥가닥 찡하게 묻어나는
하늘 밖 어느 천변에 물소리 불러 놓고
저무는 왕조의 허술한 돌담을 돌아
목마른 한 시대를 절뚝이며 가는 길에
묻어둘 동구의 이름 가얏고에 실어 두고
얄타공주 사랑의 늪 그보다 더욱 깊게
선율 위로 번져가던 여름 달 풍문 안고
수백리 형벌로 가는 휘적휘적 사랑길
애당초 궁월이사 그가 살 곳 아니었대도
한 생애 얻은 한이 아무래도 너무 깊어
열두 줄 남은 가락도 그렇듯 애틋한가
문무학
대가야읍에 갔던 날은 폭우가 쏟아졌다. 우륵박물관을 목적하고 간 거였는데 하필 월요일이라 휴관이어서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하고 박물관 정원과 정정골, 그리고 하릴 없이 읍내를 소요하다 돌아왔다. 일주일 후 다시 갔을 때도 폭우가 내렸다.
현재 우륵박물관이 있는 곳은 정정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우륵의 출생지이며 선생이 가야금을 타는 소리를 묘사한 이름이라고 한다. 정~정 정~정……
거문고에서 보듯 옛 현악기를 ‘고’라 했다. 우륵이 만든 악기는 가야의 고라 해서 가야고라 했다. 그 한자어로 가야금이 되었다. 금슬(琴瑟)이라는 말이 있다. 부부의 정과 화합이 도탑다는 뜻의 이 말 어원은 가야금(琴)과 비파(瑟)다. 금슬의 어울림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은 없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모르겠으나 상상만으로는 가히 천상의 소리가 아닐까 한다.
슬금슬금 는개 자욱한 누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며 누군가가 뜯어주는 가야금소리를 듣는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그럴 때 대숲을 들락거리며 지저귀는 백로들의 풍경도 곁들였으면. 부르주아적 판타지지만 가끔은 이런 호사를 누려보고 싶은 때가 있는 것이다.
황병기 :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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