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은 엄연히 천(川)이란 글자가 붙어 있었지만 6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은 냇가로 인식하지 않았다. 청계천 하면 그냥 다리였다. 그 다리는 물 위의 다리가 아닌 고가도로였다. 시정에 잡가들 중 청계천 다리가 어떻고 하는 노래들이 많았었다.
나 역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주도의 복원공사로 이슈가 될 때에야 그곳이 내(川)였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위정자들의 무지는 참으로 가소롭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내 그냥 시멘트로 덮어 버리고 차들이나 다니게 고가다리를 놓았으니 당시로선 참말 대견한 정책이라고 축배를 들었을 것이다.
언젠가 여행 중에 버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말 많은 한 노인이 다른 사람들 불쾌한 것 아랑곳없이 큰소리로 이것저것 주워셍기고 있었는데 차창 밖 산을 보며 하는 말이, 세상에 제일 필요 없는 게 산이야. 없어도 사는데는 아무 지장 없는 저따우 산을 다 밀어 버리면 땅 넓어서 농사도 많이 지을 텐데 정부는 뭐할라 저걸 그냥 내버려 두는지 몰라. 산 없으면 찻길 만들기도 좀 좋아. 하이튼 돌대가리들이야.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나이만큼 현명해진다는 말이 진리가 아님을 그때 깨달았다. 어찌 저리 소견머리가 없고 유아적일까.
청계천 복개에 대한 생각도 그와 똑같았다. 소위 전문가란 사람들이 어찌 그리 머리가 짧았을까. 내를 덮느라 돈을 쓰고 또 그것을 걷어내는데 돈을 쓰고.
어쨌든 복원공사의 성공과 실패는 둘째 치고 그래도 시멘트 아래서 썩어가는 것 보다야 활짝 열린 세상에서 하늘을 보고 흐르게 하는 것 자체는 잘된 일이라 생각한다.
춘천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본사사무실이 왕십리에 있어서 그곳을 다녀올 기회가 많았었다. 그때마다 접하게 되는 고가도로 경관은 딱 서울의 이미지였다. 답답하고 삭막하고 살풍경한. 그리고 가난에 찌든 도시서민들의 삶.
청계천은 가난한 서민들의 그것이었다.
천형(天刑) 같은 가난. 분노하지만 결국은 그 분노마저도 사치로 여겨지는, 기어이 억압에 굴종하여 포근하게 안겨들고 마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
민중가요 록밴드 천지인이 노래한 <청계천 8가>는 이러한 청계천과 그곳 사람들의 연민과 고단한 삶의 소묘다.
그곳에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동상이 있다. 그는 평화시장을 대표로 하는 노동자들의 전설이다.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청계천은 서울서 한번도 산 적이 없는 내게도 크고 작은 에피소드와 기억의 편린이 서려 있는 곳이다.
청계천의 제 이름인 맑은 내. 이름처럼 현재 그런지 안 그런지는 모르겠다.
김성민 작사 작곡 손현숙 노래 : 청계천 8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