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엉겅퀴야 엉겅퀴야 철원평야 엉겅퀴야

설리숲 2017. 8. 30. 14:34

 

   엉겅퀴야 엉겅퀴야
   철원평야 엉겅퀴야
   난리통에 서방 잃고
   홀로 사는 엉겅퀴야

 

   갈퀴손에 호미 잡고
   머리 위에 수건 쓰고
   콩밭머리 주저앉아
   부르느니 님의 이름

 

   엉겅퀴야 엉겅퀴야
   한탄강변 엉겅퀴야
   나를 두고 어디 갔소
   쑥국소리 목이 메네

 

                  민영 <엉겅퀴 꽃>

 

 

 <엉겅퀴 꽃>을 쓴 민영 시인은 철원 태생이다. 이산과 분단의 현실, 그리고 고향 철원과 그곳 사람들에 대한 애틋함이 짙게 밴 명작이다.

 

 

 

 

 

 

 

 영화도 아니고 그냥 허접한 에로비디오를 한편 보았다. 허접한 주인공이 선배의 아내에게 흑심을 품고 그녀의 관심을 끌려 할 때면 노래를 흥얼거린다. 엉겅퀴야 엉겅퀴야 철원평야 엉겅퀴야~ 노래가 허접이지만 어쩐지 뒤에 남는 여운이 있었다.

 그러고 났는데 철원평야를 가자는 자운영님의 전화가 왔다. 오호, 이런! 철원평야라니. 방금 본 에로비디오 속의 엉겅퀴 노래의 여운에 취했을까 꼭 어떤 암시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가겠다고 선뜻 대답했다.

 

 

 

 

 동두천의 아침은 쌀쌀했다. 오싹하니 소름이 돋았다. 여전히 폭염과 열대야에 묻혀 있는 남쪽지방과는 완전 딴 세계다. 일행을 만나 철원평야로 갔다.

 소이산 들머리에 관전리라는 마을 팻말을 보았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오래 전의 소녀가 떠올랐다. 소싯적에 지방 라디오 한 프로그램에 펜팔 코너가 있었다. 그때 내가 보냈던 펜팔 상대녀의 주소가 갈말읍 관전리였다는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지금 돌아보면 민망하고 멋쩍은 편린이지만 그때는 그런 것들이 청춘들의 하나의 트랜드였고 세상 모든 것이 보랏빛이었던 시절이었으니 무슨 짓을 해도 즐거운 시절이었다.

 

 내 평생 유일한 그 펜팔편지에 답장이 왔다. 단 한번이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다고 했으니 소녀는 아니었다. 편지에 노동당사 이야기도 있었고 자기 마을의 척박함을 썼다. 매일 보느니 군바리와 군부대고 어디 놀러갈 만한 데도 없고 사람들이 업신여기는 깡촌에 사는 게 창피하다는 이야길 썼다. 그래서 학교라도 다른 곳에서 다니고 싶었지만 대학도 떨어졌다고. 서울로 취직해 빨리 떠나고 싶다는 그 또래의 투정을 적어 보냈었다.

 

 왜 아니겠는가. 30여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도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멈춰 서서 고스란히 세월을 묵히고 있는데. 이 정체된 시간의 땅 안에서 노인들도 삶의 방향 없이 그러 살아지는대로 살고 있는데 꽃다운 청춘의 무력감이야 오죽했겠는가.

 

 

 

 

 

 

 

 

 

 

 

         지뢰꽃

                               정춘근

 

   월하리를 지나
   대마리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서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긋이 밟고
   제 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꺾으면 발밑에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꽃들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흘깃 스쳐 가는
   병사들 몸에서도
   꽃 냄새가 난다

 

 

 

 

 

 

 소이산 벤치엔 이미 가을이 덮여 있다

 

 



 

 

 

 

 

 

 이 일대는 군부대가 많아 인터넷 항공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은둔의 땅이다. 날마다 확성기의 고문이 인간들의 정신을 갉아 먹는  유형지다.

 

 

 

 

 

 

      엉겅퀴

 

 

 

 여름의 끝자락이다. 이곳 공기는 여름보다 가을에 더 가까이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소이산에서 너른 철원평야를 오래 내려다보았다. 들판 너머 손에 잡힐 듯한 접첨접첨 능선들. 저곳이 이 지방의 역사를 만들고 있는 분단된 나라의 한쪽이다. 이쪽을 향한 대남방송의 확성기소리가 동네 이웃집 노인이 틀어놓은 라디오처럼 생생하다.

 

 여전히 전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살고 있다. 잊고 사는 게 아니라 일상이니까 면역되어 무감각해진 게 맞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북에서는 미사일을 쏴대고 먼 곳의 미국은 금방이라도 뭔 일이 있을 것처럼 호들갑스러운데 정작 우리의 하루는 무심하게 흘러간다. 이것도 이 민족이 지닌 슬픔이다. 아파도 아픈지 모르는.

 산기슭 들꽃은 어디나 똑같이 피었다 지는데. 똑같은 저 들꽃들이 처량하고 애절한 것은 사람의 감정이 이입됨인가.

 

 

 

 인공통치 때 철원은 강원도의 도청소재지였다. 1946년 강원도청은 원산으로 이전하고 이 때 관전리에 세운 노동당사다. 전쟁 후 철원이 남한에 귀속되고 노동당사도 우리의 문화재가 되었다.

 

 

 

 

   한탄강 비둘기낭

 

 

 

 

 한탄스런 한탄강은 원래 이름은 대탄(大灘)으로 큰여울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이곳 노인들은 한여울이라 부르고 있다.

 

 

 

 

 

 

 

민영 시 이정란 곡 김용우 노래 : 엉겅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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