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인지 1993년인지 확실하지는 않은데 아무튼 그 어름 강원대학교 백령문화관에서 안치환 콘서트가 있었다. 공연의 간접적인 관계자와 얄팍한 친분이 있어 반값으로 입장권을 구입했다. 당시 연심을 품고 은근하게 수작 부리고 싶은 아가씨가 하나 있던 터라 두 장을 손에 넣고는, 안치환도 안치환이려니와 어쩌면 예쁜 아가씨도 얻게 되리라는 기대감도 한층 기분을 좋게 했었다.
그러나 전에 이 블로그 어느 글에서 한 줄 쓴 기억이 있지만 바람을 맞았고 그걸로 그녀와는 터럭만큼의 인연조차 없게 되었다.
아무려나 그건 그거고 안치환의 공연은 좋았다. 웅장하고 화려한 사운드가 아닌 늘 그렇듯이 단지 기타 하나 메고 노래하는 공연이지만, 그래서 정갈하고 조촐하니 그의 매력을 한껏 즐길 수 있는 그런 콘서트였다. 특유의 쇳소리 나는 목소리도 좋았고 거기에 환호하며 연신 휘파람 불어대는 관객들의 호응도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사실은 안치환이 아니라 그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왔던 여가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장필순이다.
그때 장필순의 인지도는 아주 낮았다. 김선희와 ‘소리두울’이라는 듀오로 데뷔했다가 김선희의 유학으로 솔로로 다시 데뷔해 ‘어느 새 내 나이도 희미해져 버리고’ 하는 노래가 제법 대중의 인기를 얻긴 했지만 나를 비롯한 평범한 대중들에게 언더그라운드 가수중의 하나라는 인식 이상의 인지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실은 소리두울 시절에도 그렇고 톱가수로 상승한 이후에도 다른 아티스트들의 노래에 코러스로 참여해 많은 음반작업에 기여를 했다. 그녀의 진가를 알 수 있는 활동이다.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건 그렇고, 솔직히 말하면 그날 공연에서 나는 안치환보다 장필순의 노래가 훨씬 좋았다. 아마 세 곡을 불렀던 것 같은데 다는 모르겠고 그 중의 한 곡은 <방랑자>였다. 그 즈음 방송에서도 자주 들리는 노래였다.
관객을 향한 진지한 표정과 열정, 이따금 보이는 미소에서 느껴지는 여유,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생 그녀를 바라보게 만든 자유로움. 딱히 그럴 만한 소스도 없는데 그녀의 노래에서 또 노래하는 모습에서 자유를 느낀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의 동경 같은 것. 길 위에서의 고독마저도 우울이 아닌 무한한 행복이 될 것이리라는 삶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이다.
그날 그녀에게서 받은 신선한 인상은 이후로 지금까지 그 내 가슴에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좋아하던 아가씨가 내 마음에서 완전 떠나 버린 그날 나는 다른 사랑을 만난 셈이다.
그간 누가 물어보면 조용필을 제일 좋아한다고 대답하곤 했지만 돌고 돌아 지금껏 내 마음에 있는 건 장필순이었음을 어느 때 깜짝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내 음악적 취향은 포크송이었음을 비로소 깨단한다. 이 나이에 새삼 느껍고 그리운 건 양희은 장필순 송창식 고인이 된 조동진의 자유로운 영혼이다. 순수, 인간근원의 심성.
결국 내가 좋아한 건 조용필이 아니었고 베이비복스 원더걸스가 아니었다. 그저 좋아하는 걸로 착각했던 것 같다.
장필순 노래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여행 길 떠남의 테마가 나를 고독하게 해준다. 즉 그것은 자유라는 지고한 진리를 생각하게 해준다. 이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당연 그러한 가치관을 지녔을 테다.
아 또 한 사람 정태춘이 내겐 그런 존재다
최백호의 최근 음반이 또한 나를 명상하게 하고 길 위로 나서게 하는 묵지근한 메시지를 준다. 이쯤 되면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방증이라 할는지는 몰라도.
김성호 작사 오석준 작곡 장필순 : 방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