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숲에서

가을의 여인 층꽃나무

설리숲 2018. 5. 23. 22:15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상식으로 보는 시선은 작고 여린 풀이지만 정체는 나무다.

한 여름 피었다가 씨만 남기고 사라지는 허무한 삶이 아니라 강인한 몸체로 겨울을 버텨 이듬해도 그 다음 해도 삶을 영위하는 어엿한 나무.






 

여름이 끝나갈 무렵 피기 시작해 첫 추위가 오기 전까지 가을을 점령하는 보라색 가을 여인.

공원이나 남의 집 마당, 또는 관공서 정원, 산의 들머리에 지천으로 흔한 가을나무.

나무라지만 그 꽃이 있을 때만 시선을 받는 허무한 존재감.

그 꽃말은 가을의 연인이라고.

 

존재감은 미미하지만 풀처럼 가벼이 옮겨 다니지 않는 그 진중함을 배운다.

한때 짧게나마 화려한 미모를 뽐내고는 허무하게 스러져 잊히고 말지만 이 가을 여인이 사람들에게 전한다.

겉으로 보는 것은 다만 허상일 뿐이야. 당신들은 물체의 안과 뒷면도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해요. 낭중지추라는 말을 늘 마음에 새기고 생활하길 바라요.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수많은 사연들이 가을길에 흩어지네

   만났다 헤어지는

   인생이란 그런 것

   외로운 꽃이라고 그늘에 숨지 마오

   찬 이슬에 젖어 있는

   가을에 온 여인

 

 



이용복 : 가을에 온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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