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사랑 정원에 큰 나무가 하나 있다.
지난 가을 스럭스럭 낙엽이 지는 것을 보고 마로니에라는 걸 알았다. 여기저기 떨어진 열매는 밤과 똑같다. 밤인 줄 알고 먹는다면 큰 사달이 난다. 맹독이 있다고 한다.
이 나무 그늘에 간이휴게공간이 있어 동료들이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핀다. 올 봄에 역시 잡담을 나누다가 이 나무를 쳐다보면서 누군가 궁금증을 표한다. 다른 꽃들은 다 피었는데 이 목련은 왜 봉오리도 안 나오지? 하긴 나무와 이파리가 목련을 많이 닮았다.
나는 짐짓 아는 체 하며 이거 목련 아니고 마로니에라고 정정해 주었다. 이후 다들 그렇게 알고 더 이상 의문은 없었는데 어느 날,
그들 중의 하나가 이의를 제기했다. 마로니에가 아니라고. 무슨 소리냐고, 나는 확신에 차서 헛소리 말라는 투로 강력하게 성토했다. 그는 네이버 구글 등의 사진까지 내게 보여주며 마로니에 아니고 태산목이라고 하네요, 한다.
나는 펄쩍 뛰었다. 마로니에를 마로니에가 아니라고 하다니! 네이버의 지식을 어디 다 믿을 수 있는 거냐. 다른 예를 들어서 가령 우리 모두 다 개나리로 확실하게 알고 있는 나무를 네이버에서 어느 누가 개나리가 아닌 다른 나무라고 가르쳐 준다면 그렇게 믿겠느냐.
확실히 나는 마로니에를 알고 있었다. 우리말로 칠엽수요 그 잎이 일곱 장이라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 나무는 확실히 잎이 일곱 장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지난 가을 밤처럼 생긴 그 열매를 보았단 말이다.
이 논란은 꽃이 필 때가지 보류해두기로 했다. 꽃이 피면 확실히 정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꽃이 피었다. 내가 완전히 마로니에로 확신하고 있있던 이 나무는 마로니에가 아니었다. 태산목도 아니고 ‘일본목련’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보았던 밤처럼 생긴 열매도 의문이 해결되었다. 일본목련 가까이 밤나무가 두어 그루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도 강력하게 주장하던 내가 좀은 뻘쭘해지긴 했지만 새로운 상식 하나를 얻은 셈이니 괜찮다. 이젠 어디 가서 마로니에라는 잘못된 상식으로 우기진 않을 테니까.
이 처음 만나는 일본목련나무가 내게, 또 우리 인간에게 전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는 아니다. 살아가다보면 언제든지 오류가 날 수 있는 게 인생이며 답이 하나인 문제는 없으니 오로지 내가 알고 있는 것만 믿고 주장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이라고.
진리는 오직 한 길로만 통하는 게 아니다. 여러 갈래의 길이 있으매 당신은 그 중 당신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을 선택해 그곳에 도착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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