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부석사의 밤

설리숲 2017. 8. 2. 00:58

 

 

 다들 돌아갔다.
 모두가 제각각 안온한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나만 홀로 남았다.
 영주를 비롯한 경북 지방에 천둥 번개를 동반한 장대비가 쏟아졌다. 비를 뚫고 봉화로 되돌아갔다.
 나의 이번 여행은 애초에 23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봉화 읍내를 걸었다. 무섭게 내리던 비는 말끔히 그쳤다.
 아직도 여전할까 그 아가씨.
 5년 전 도보여행 때 들렀던 수정다방, 아름이라는 이름의 예쁜 아가씨.

 그녀가 아직도 거기 있으리라고는 아예 기대도 않았다. 한데도 마음은 사뭇 그녀 생각이 들어찬다.
 어디더라. 수정다방을 찾아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손바닥만 한 읍이야 눈감고도 찾을 수 있겠다.

 아름이는 없었다. 아름이 뿐만이 아니라 다방 자체가 없어졌다. 수정다방이었던 자리는 PC방이라는 생경한 간판이 붙어 있었다.
 그럴 테지. 하루가 멀게 변하는 게 사람의 세상이니까.
 저 하늘과 바람, 산천과 초목은 늘 그렇게 초연하건만 변하는 건 오로지 인간들뿐임을……
 짐작은 했으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설렁하니 허허롭다.
 어디로 갔을까 그 여자.
 내 그녀에게 눈곱만한 정도 주지 않았는데 왜 이리 허전한 건가. 사람의 인연이란 그래서 소중하고 애틋하다 했는가.
텅 빈 가슴을 안고 읍내 거리를 걸었다. 한결 시원한 대기, 산맥을 넘어온 바람이 읍내거리를 쓸고 지나간다.
 걷다가 문득 전날 밤 들었던 노랫가락이 자꾸만 생각났다.


 부석사에서의 하룻밤.
 가장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당연 잠이 제대로 올 리 없었다. 민박집 마당에서는 이야기소리와 웃음, 목울대를 적시며 술 넘어가는 소리가 뒤섞여 왁자지껄했다.
 잠이 들었다 깼다 비몽사몽, 마당에서는 노래자랑을 하는지 연신 환호소리 높은데 문득 선잠에서 깼을 때, 누군가 부르는 노래가 귓가에 꿈결처럼 들려 왔다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었지
    인생이란 강물 위를 끝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 가겠지 


 간밤의 잠결에 들리던 그 노랫말을 되뇌었다.
 , 그렇다.
 우리 생은 저렇듯 부초같이 떠돌다 떠돌다 어느 강언덕에 예고 없이 닿는 건지도 몰라. 그래서 아름이도 그 어디론가 떠다니면서 같이 썩을 물을 찾아 헤매고 있을까.
 여행이란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하거니와 결국은 목적이 없다. 어디든 잠시 머물면 거기가 내 집이요, 보금자리가 아닐는지……
 비 내린 읍내거리를 거닐며 나는 지난 이틀 동안의 도보여행을 생각하며 왠지 모를 허무함에 빠져 자꾸만 김광석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봉화의 밤은 점점 깊어 가는데,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도 찾듯이, 오래도록 그렇게 배회했다.

 

 

 20046월 인도행에서의 첫 도보여행을 다녀오고 쓴 후기다.

 지나고 나서 그 인연이 내 인생의 기조를 바꾸어 놓았음을 깨닫게 된다.

 13년이 흘렀다. 그 인연이 되었던 용파리님이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13년만에 정선 숲을 나왔다. 또 이 13년간의 다원생활도 졸업했다. 어떤 길이 앞에 놓여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전혀 새로운 것이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이왕이면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가야겠다.

 

 

 

 

 

 

 

 

 부석사를 다녀왔다. 그간 두어 번인가 다녀오긴 했다. 그러나 사찰 경내까지 들어가지는 않았었다. 처음 방문의 기억은 역시 전혀 없다. 초행길 같은 낯설음과 설렘이 좋다.

 

 13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 게 한두 가지랴마는 가장 큰 변화는 지금은 반드시 버스를 대절한다는 거다. 당시에는 어디 출발지만 지정해 주면 버스든 기차든 제각각 알아서 그곳으로 모이곤 했는데 이제는 전세버스 없는 도보는 생각할 수 없고 혹 누군가가 버스 없는 여행을 기획한다면 대번 큰 난리가 날 것이다.

 

 그날도 영주터미널에 모여 출발했다. 시내버스로 부석사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남짓 제법 먼 길이다. 그날 걸어서 부석사를 저녁에 도착했다는 건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다. 그것도 연도에 있는 역사 유적들을 둘러보면서였다. 물론 풍기를 거쳐 가는 버스와 달리 지름길로 걷는 코스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걸음에는 무시 못 할 능력이 있는 것이다.

 

 12일의 그 첫 여정의 인상은 강렬한 것이어서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어느 정도는 기억해 낼 수 있다. 용파리 라이파이 동해 바다 김하철 파라키스 모닝 산꾼 운동화와끈들 섭이 섭이앤 나리 뚜벅이 영원 베티 바람이 돌쇠 복실이 노송 무시로 카페라테 눈꽃빙수 은갱 양파 러브민애 꿈은이루어진다 못생긴나무 검정대나무 훌훌……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인연도 있고 전혀 뜬소문조차도 듣지 못하는 이도 있고. 사람살이란 게 뭐 대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중부지방은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폭우가 쏟아져 수재민이 생기곤 하는데 남쪽지방은 내내 비 없이 폭염이 삶아댄다. 대구 쯤에 오니 하늘이 흐렸다. 남부지방에서의 열기가 없어 한결 기분이 상쾌하다. 그 유명한 대프리카로 피서를 온 셈이다. 북으로 갈수록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영주 부근에 다다라서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무섭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저녁과 밤을 새도록 비가 퍼부었다. 아침에 보니 개천에 흙탕물이 흐르고 있다. 어지간히 내렸던가 보다.

 겨울에 눈 구경하러 중부지방으로 가듯 여름에도 비 구경하러 중부로 가야하는 요상한 기후의 추이다.

 

 

 

 

 

 

 

 부석사는 비에 흠뻑 젖었다. 안개가 몰려왔다가는 사라지고 연이어 비는 흩뿌리고 그 속의 숲과 산은 진초록의 절정이다.

 누구라도 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 보았으리라. 기대서서 가뿐하게 비 맞고 서 있는 석등을 본다. 안개가 가린 안양루 저 너머 산등성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한층 새초롬한 꽃과 풀잎들.

 

 

 

 

 

 

 

 

 부석사(浮石寺)란 이름은 이 바위에서 연유했다. 이 전설은 의상대사를 좋아하는 선묘라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아니 왜 고금으로 여자들은 연애자격이 없는 중들을 좋아하고 따라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도 중들은 어디 나들이할 때 혼자 다니는 경우가 없다. 보통 두세 명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다니는데 성질 삐딱한 내 눈에는 좋게 보이지 않는다. 그 보살이라 불리는 여자들의 개인 신상이야 들여다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내 아내가 그러고 다닌다면 고울 리가 없다. 그런 중들은 운전할 때 선글라스까지 쓰고 폼을 잡고 다닌다.

 

 

 

 

 13년 전 그날 부석사의 밤은 노랫소리로 아스라하게 깊어 갔고, 13년 후의 부석사는 빗소리로 깊어 가고 있었다.

 

 

 이게 그 민박집이었는가 모르겠다.

 

  시내에 있던 영주터미널은 외곽지대로 옮겨갔다.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터미널 건물만 섰다.

 

 

 그러나 다시 남쪽지방으로 오니 역시 해는 쨍쨍 폭염 속에 끓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참으로 넓기도 하다.

 

 

 

 

 

 

 

김정규 작사 송문헌 작곡 홍인숙 노래 : 부석사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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