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선구자는 매국의 노래다

설리숲 2017. 8. 14. 22:58

 

 일찍이 고 문익환 목사는 가곡 <선구자>를 친일의 노래라고 규정하고 거부했다고 한다. 아무리 극진보주의자(한쪽에선 종북 빨갱이라 부르는)라 하더라도 온 국민이 항일투사들의 위대한 행적을 찬양한 것으로 알고 있는 노래를 부정하다니  좌파들도 이 부분에서는 의아했을 것이다.

 

 선구자의 작곡자는 조두남이다. 친일인사이다. 마산음악관은 원래는 조두남음악관으로 개관했다가 그의 친일행적이 드러나 한 달 만에 폐관했다가 지금의 명칭으로 재개관하였다.

 

 윤해영은 그간 <선구자>를 작사한 사람이란 것 외에는 알려진 행적이 전혀 없었다. 조두남이 쓴 <그리움>이란 회고록에 비로소 그에 대한 일화와 행적이 드러났다. 조두남은 해방이 되기까지 만주에서 음악활동을 했다.

 회고록에서 조두남은 1932년에 윤해영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목단강의 어느 싸구려 여인숙에 기거하고 있었는데 한 사나이가 찾아와서 우리 민족의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염원하고 민족의 구심이 될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노래가사를 주고 갔다고 했다. 윤해영이라는 이름 석 자만 일러주고 홀연히 떠났는데 이후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이후로 한번도 그를 만나기는커녕 뜬소문조차 하나 들어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노래가 <용정의 노래>로 지금의 선구자다.

 

 그런데 이 회고록이 허구요 조작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1944년 흑룡강성 영안에서 있었던 조두남의 신작발표회에는 윤해영도 참석하였고 음악회의 레퍼토리도 <용정의 노래>를 비롯해 산, 아리랑 만주, 목단강의 노래 등 윤해영이 작사한 노래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 같은 폭로는 조두남과 같은 시기 활동했던 김종화의 증언을 통해 나왔다.

 윤해영은 조두남의 회고에 등장하는 시기보다 늦은 1940년대에 주로 활동한 인물로용정의 노래>,만주 아리랑>,오랑캐고개>,해란강>, <아리랑 만주>, <사계>,발해고지>, <척토기>,낙토 만주 일본제국의 만주 침략으로 세워진 만주국의 건국이념을 찬양하는 다수의 친일 시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낙토만주는 만주국에서 정책적으로 널리 보급한 노래이며, 아리랑 만주는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한 만선일보의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이다. 또한 무단장에서 관제 단체인 오족협화회지부의 선전과 간부를 지낸 인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조 두남이 거짓 회고록을 쓴 것은 윤해영이 일제와 낙토만주를 찬양한 적극친일분자였고 조두남 자신의 정체도 그러했기 때문에 그와의 관계를 청산할 필요가 있었다. 단 한번 만나고 홀연히 사라져 다시는 보지 못했다고 함으로써 윤해영을 신비주의로 포장하고 더불어 자신의 전력도 세탁하고자 했던 것이다.

 

 선구자’라가사 단어는 원곡인 용정의 노래를 나중에 조금의 수정을 거치면서 첨가한 단어인데 여기서 선구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민족을 구하기 위해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리는 그 선구자가 아니요, 만주국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즉 독립운동가가 아닌 그 반대 친일군들이다.

 

 80여년을 우리는 선구자를 민족의 노래로 알고 부르면서 가슴에 장엄하고 비장한 감동을 일으키곤 했었다. 기가 막힌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광복절이다. 여전히 우리 역사의 뒷면에 가려진 진실이 많다. 참으로 개탄스런 이 나라의 욕된 현실이다.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 박인수 노래 :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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