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요
내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가요 중 최고의 명곡이라 생각한다.
발표된 지 40여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세련됐다. 일본풍의 가요 일색이던 60년대에 전기기타를 비롯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문화충격이었다. 이후 이런 사운드는 신중현 등에 의해 대중화되었고 같은 시기 열풍이던 포크송과 더불어 70년대를 주도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가요는 많은 장르의 음악이 시작되었고 풍부하고 다양한 노래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최고의 명곡이라 생각하는 <해변으로 가요>는 실은 일본 노래다. 한국에서는 일본 노래가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40여년을 이 일본 노래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래로 군림하고 있었으니 어이없고 민망한 일이다.
이 노래 원작자는 재일교포 이철이다. 재일교포라고 해도 엄연히 일본사람이다. 그간 키보이스의 음반에는 작사 작곡자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1970년 음반에는 아예 기록이 없고 1976년 음반에는 키보이스 작사 작곡으로, 1983년 음반에는 뜬금없이 김희갑 작사 작곡으로 표기됐다. 김희갑의 곡으로 정식으로 등록됐다가 1996년에는 장용으로 변경등록되었다. 장용은 키보이스 2기 멤버였다. 1998년에 장용 씨가 사망하고 고인의 딸인 장실비아가 저작권을 승계했다.
이 같은 사실을 안 이철이 소송을 걸어 2007년에 비로소 원작자에게 저작권이 돌아갔다.
문화예술에 대한 우리나라의 관리체계가 이처럼 엉망이었던 것이다. 그보다도 일말의 가책 없이 자기 것으로 둔갑시킨 사람들의 뻔뻔한 양심이 근천스럽다.
이 노래가 일본노래금지국인 한국으로 상륙한 연유는 이렇다.
1968년 서울시민회관에서 아시아그룹사운드페스티벌에 이철이 소속된 일본의 ‘아스스트로 제트’라는 일본 그룹사운드도 참가하였다. 그들이 공연한 노래가 <하마베 에이꼬’(浜邊へ 行こう, 해변의 연인)>이었다. 한국에서는 일본말로 노래할 수 없어서 지인을 통해 한국말 번안을 의뢰했는데 노랫말을 번역해 준 이가 소설가 이호철이라고 한다.
이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키보이스가 이철에게 자기들이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요청을 해와 허락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키보이스가 이듬해 정식 음반에 수록함으로서 이 노래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저작권체계가 자리를 잡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사실 60~70년대에 우리나라 가요의 절반 정도는 번안가요였다. 물론 저작권료 없이 마구 가져다가 불렀다.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을 때니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남의 노래를 공짜로 가져다 부른 사람들이 그런 노래를 저작권으로 묶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들의 노래 음원을 돈을 주고 사야 된다는 말이다. 정작 원작자에게는 한 푼도 돌아가지 않는 저작권료를. ‘평생 남의 노래로 먹고 살았다’는 농담을 하곤 하는 조영남의 노래들도 돈을 지불하지 않고 함부로 쓰면 저작권침해에 걸린다.
2003년 이철이 저작권에 대한 소송을 걸었는데 장용의 딸인 장실비아도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맞고소를 했다고 한다. 이철이 승소해 2007년에 최종적으로 그이 노래로 등록되었다.
대천 해변에서
이철 작사 작곡 키보이스 노래 : 해변으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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