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갑돌이와 갑순이

설리숲 2017. 9. 5. 01:58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비극이고 이수일과 심순애의 사랑도 비극이다. 영화나 문학작품에서의 슬픔은 너무나 극적이다.

 우연히 흘러간 노래 <갑돌이와 갑순이>를 듣다가,

 다 아는 가사지만 새삼 내용을 음미하니 참말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다른 비극은 두 사람이 사랑할 수 없게 각종 장치들을 얽어 놓아서 개연성이 충분하지만 갑돌이 갑순이는 방해요소가 전혀 없다. 청년이 처녀를 사랑하고 처녀가 청년을 사랑하지만 서로 내색을 못하고 안 그런 척 하다가 종내는 슬픈 이별을 고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애절하고 원통한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유의 이야기와는 사뭇 성격이 다른 원초적인 비극이다.

 

 타령조의 노래로 흥겨운 민요풍이지만 내재된 이야기는 참말 비극이다. 어느 한쪽이 좋아한다는 기색만 내비쳤다면 가장 행복한 사랑을 이룰 수 있었을 텐데, 내 본심을 들키지 않으려는 소심함이었던가 아니면 쓸데없는 자존심이었던가.

 다른 사람과 혼인을 한 그 첫날밤에 애가 타게 애인이 그리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하는 어리석은 연인들의 슬픈 코미디.

 

 어릴 때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유행가니까 따라 부르다가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오래된 구닥다리 노래로 전락시켜 버렸던 옛 가요들이 다시금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것이 나이 드는 사람들의 한 특징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이를 떠나 객관적으로 한 노래를 대할 때 과연 옛 가요들이 철학적이고 깊은 울림이 있음을 깨닫곤 한다. 지극히 짧은 노래지만 그 안엔 작가들의 혼과 예술성이 있고 그것에 가수의 육성이 녹아들어 있다.

 

 

 지금의 대중가요는 가볍고 즉흥적이다. 시대적인 상황에 맞춰야 하다 보니 그렇다. 보통 음원을 판다. 미리듣기로 아주 짧게 들어보고 선택을 하는 시대다. 그래서 듣는 순간 바로 어필을 해야 하니 음악이 자극적이어야 한다. 환경이나 기기 등 모든 인프라와 음악적인 수준이 훨씬 나아졌고 또 세련된 건 맞지만 인간미가 없다. 들을 때는 좋아도 다 듣고 나면 울림과 감동이 없다.

 

 예전 <나는 가수다>를 방영할 때 느꼈던 단상이다. 박정현의 노래실력은 최고다.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래만 잘 한다, 감동은 없다. 같이 출연한 윤도현과 비교를 하게 된다. 박정현은 노래에 기교가 많다. 그야말로 화려한 테크닉으로 듣는 사람들을 감탄시킨다. 윤도현은 기교가 없다. 어떨 땐 음정도 정확하지 않을 때도 있다. 박정현보다 못하다. 그런데 듣고 나면 여운이 길게 남는다. 아무런 기교 없이 어찌 보면 악보대로 고지식하게 내뱉는 발성이지만 그래서 화려한 박정현보다 못 부르는 것 같지만 실은 그의 노래에서 우리는 더 감흥을 받는 것이다. 박정현은 뛰어난 가수지만 우리가 좋아하고 기억하는 노래가 없다.

 

 최고의 유격수라는 김재박과 박진만을 비교해 본다. 누가 봐도 김재박의 플레이는 멋있다. 박진만의 플레이는 밋밋하고 단순하다. 왜냐하면 김재박은 쉽게 잡을 수 있는 것도 어렵게 잡는다. 몸을 날려 다이빙도 하고 한 바퀴 구르기도 한다. 관중은 그런 화려한 플레이에 환호한다. 박진만은 잡기 어려운 것도 쉽게 잡는다. 옆으로 빠질 만 한 타구도 미리 지점을 선점하여 잡음으로써 굳이 다이빙캐치까지 가지 않는다. 이런 간결한 플레이 때문에 관중들은 그의 빼어난 수비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이다. 단연코 박진만이 김재박보다 뛰어난 선수다.

 

 

 요즘의 세련되고 화려한 대중가요들은 여운이 없다. 철학이 부족하고 감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이돌이 데뷔하기 전 여러 해를 갈고 닦고 하여 그들의 실력은 뛰어나다(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 대부분의 아이돌들은 노래를 참 잘한다). 그렇지만 몇 년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하고 나면 조용하게 사라진다. 그 좋은 실력을 가지고도 가수활동을 계속하는 사람이 드물다. 엉뚱하게 연기자로 전향하기 일쑤다. 그렇게 어렵게 가수교육을 받고는 배우지도 않은 연기를 한다고 죄다 그 모양들이다. 각종 오디션에 나오는 그 뛰어난 실력파들도 그렇다. 노래 잘한다고 찬탄은 받지만 그들의 노래는 대중들에게 더 이상 어필하지 못한다. 기술만 배우고 감성을 배우지 않은 탓이다.

 

 

 클래식은 오래된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살아 있는 것이다. 단순하고 투박해 보이지만 옛 가요들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진정한 철학을 담고 있어서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흥겨운 노래로 어깨를 들썩이게 하지만 아주 슬픈 연인의 비극을 담았다. 의도했든 우연이든 절묘하게 대비시킨 그 이중적인 요소로 더 절절한 심경을 느낀다.

 내가 할 수만 있다면 가사를 첨가하여 4절에서는 두 사람 다 이혼을 하고 천생의 인연을 맺게 하여 가장 행복한 사랑의 로망과 정석을 만들고 싶다.

 

 비극은 아니지만 우리 농촌의 정겨운 연애이야기는 남진 <아랫마을 이쁜이>, 한명숙 <우리 마을> 김상희 <황소 같은 사나이> 등에 등장한다. 순수한 청춘남녀들의 설레는 정경들이 아름답다. 드라마 <최강 배달꾼>에는 짜장면집 여주인인 이민영이 고경표와 채수빈의 연애를 보면서 혼자 설레고 흥분하는 오글거리는 장면들이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는 사람들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시너지가 있다.

 

 

 

 

 

김다인 작사 김정인 작곡 김세레나 노래 : 갑돌이와 갑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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