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새마을운동

설리숲 2017. 6. 13. 00:52

 

 

 

 

 

 국민학교 4학년이던가 5학년이던가. 선생님이 장래희망을 적으라며 나눠준 설문지에 나는 자랑스럽게 새마을지도자라고 적어 냈다. 당시의 이데올로기는 반공방첩, 선진조국건설, 유신과업과 함께 새마을운동이 온 나라와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교과서에도, 길거리 눈에 띄는 곳마다 새마을 깃발과 근면자조협동 문구가 씌어 있었다. 선생님들은 수업시간마다 새마을운동을 입에 올렸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들리던 새마을노래.

 

 그러므로 새마을지도자가 장래희망이라고 적어 낸 건 내심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고 싶은 일말의 어린아이다운 꼼수였을 것이다. 아이들이 낸 설문지를 훑어보던 선생님이 이윽고 내 것을 보았는데 새마을지도자? 이건 뭐야...’하고 말하는 투와 표정이 별 싱거운 녀석 보겠다라는 뉘앙스가 역력했다. 그때의 실망감과 배신감이란.

 당신이 그렇게 새마을운동을 침이 마르게 찬양하고 교과서에도 수도 없이 새마을지도자이야기가 심어져 있거늘 웬 똥 씹은 얼굴이더냐.

 

 나중에 생각해 보면 교육지침상 그런 수업을 하지만 선생님 양심은 웃기고 있네, 하는 이념이 아니었나 한다.

 

 

 

 

 

 

  경북 청도군 신거리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라고 한다. 그런 자긍심이 있는지 번듯한 기념관도 있고 마을 입구에서 입장료도 받는다.

 어떤 연유로 새마을의 효시가 되었는지 차고 넘치는 상세한 정보는 그만두고, 보나마나 박정희와 그 유신정권을 찬양하는 콘텐츠로 도배를 했을 것이 뻔했다. 이 부끄러운 난리를 겪었으면서도 홍준표에게 표를 몰아준 답 없는 TK 아니던가.

 

역시나였다. 기념관에 들어서니 실내 스피커에서 군가들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역시 자료들은 박정희와 그의 사업 일색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새마을 하면 박정희요, 그것을 이야기하려니 자연 박정희의 치적이 따를 수밖에.

 

 

 

 

 

 

 

 

 

 현충일이었다. 대문마다 조기를 달았다. 오랜 가뭄 끝에 충분하지 않은 비가 지짐거리기도 한 날이었다. 어디서나 보는 흔한 시골마을의 정경이다.

 이 마을 주민들에게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라는 자긍심이 있는지는 모르나 마을은 경부선철도와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어 내내 소음 속에 묻혀 있다. 옛 사람들은 전에는 이걸 개명과 개화로 해석하며 자랑스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얹은 게 슬레이트였다. 초가는 가난의 상징이었으니 슬레이트로 새 단장한 것이 새마을이었다. 기둥과 벽은 그대로인데 지붕만 바꾼 것이다. 발암물질인 석면과 시멘트를 섞어 압착한 것이 슬레이트다. 이것을 집집이 머리에 얹고 살았다.

 

 

 

 

 

 

 

 

 

 

 

나는 4-H 회와 사회와 우리나라를 위하여 
 나의 머리는 더욱 명석하게 생각하며 
 나의 마음은 더욱 크게 충성하며 
 나의 손은 더욱 위대하게 봉사하며 
 나의 건강은 더욱 좋은 생활을 하기로 맹세함

 

 

 어렸을 때 내 바로 위 누이는 4H구락부 회원이었다. 말이 회원이지 특별히 활동하는 것도 없었다. 날마다 마을회관에 나가기는 했지만 회관은 너저분하기만 했고 망가진 책상 따위 깁기 하나 없는 청 빈 공간이었다. 내 어린 눈으로는 그저 동네 사내와 계집들이 어울려 노는 것이 주목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나름으로 자신들은 뭔가를 추진하고 있는 창창한 청소년들임을 자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누이는 집에서 늘 위의 4H서약서를 구락부에서 지침하여 전해준 몸짓을 써 가며 암기해곤 했다.

 

 내 누이보다는 두어 살 적고 나보다는 두어 살 많은 어떤 소녀가 있었다. 얼굴이 예뻐서 호감과 눈길이 가곤 했는데 이 소녀가 마을회관 모퉁이나 너저분한 마당 등지에서 건들거리며 침을 찍찍 뱉곤 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예쁜 외모에 반하는 그런 불량스런 행동거지에 곧바로 실망을 하고 말았는데 담배 피우는 것도 보았고 그 후로 동네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며 좋지 않은 추행 행각을 벌이고 다녔다. 첫사랑은 아니지만 예쁜 외모 뒤에 도사린 불미한 그녀로 인해 여자에 대한 불신과 미모의 교활성을 일찌감치 터득했던 것 같다.

 

 

 

 

 

 4HHead(머리, ), Heart(마음, ), Hand(, ), Health(건강, )이다. 가난하여 미국으로부터 경제적인 원조를 받는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같이 전파한 농촌과 사회계몽의 청소년운동이다. 당연 우리나라도 미국의 원조와 함께 이 운동이 들어와 퍼졌다. 70년대는 박정희 정권의 사업과 궤를 같이해 '새마을4H구락부'라는 이름으로 개칭하였다.

 

 박근혜는 대통령시절과 이미 그 이전부터 새마을운동을 자주 거론하며 과거로의 회귀에 집착을 보이기도 했다. 새마을운동을 수출해야 한다고 역설하곤 했는데 그것은 미국의 4H 수출을 따라하고 싶었던 것이고 그 결과 수많은 나라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자찬하기도 했다.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에도 구체적으로 그 나라 이름을 열거해 놓았다.

 

 아, 그러고 보면 우리는 56년간을 박정희의 그늘 밑에서 살아온 셈이다. 엊그제까지도. 이제는 그것들을 청산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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