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긴 머리 소녀

설리숲 2017. 3. 21. 21:06

 

 젊어 한때 기타에 빠진 적이 있었다. 돈을 아껴 싸구려 기타를 샀을 때의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딴따라가 되기 위한 애착은 물론 아니었다. 기타에 빠졌다고 자평은 하지만 보통 이상의 실력을 가질 만큼의 음악적인 소질도 없었고 노래도 그닥 뛰어나지 못했다. 소년적인 치기와 낭만 같은 것이다. 기타 퉁기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어쨌든 폼 좀 나 보였고 나도 그러고 싶었을 뿐이다.

 

 듀엣 <둘다섯>의 노래들은 당시 기타를 좋아하던 아이들의 필수 레퍼토리였다. 물처럼 자연스레 흐르는 멜로디와 음의 높낮이가 크게 변화하지 않는 특성, 자연친화적 일상적인 노랫말. 그러나 무엇보다도 코드를 잡기가 쉬웠다. 나는 <일기><밤배>를 주로 노래했었다.

 포크라는 장르에도 분류가 있어 김민기 한대수 등의 사회 저항적 부류가 있는가 하면 뚜아에무아, 둘다섯 등은 순수 서정적인 노래를 했다. 일기, 밤배, 얼룩고무신, 눈이 큰 아이, 먼 훗날, 긴 머리 소녀 등은 오래도록 사랑받는 둘다섯의 노래다.

 

 <긴 머리 소녀>는 내가 제일 좋아한 노래였는데 클라이막스에서 음이 너무 높아 즐겨 부르지는 않았다. 나중에 오카리나로 이 노래를 해 보았더니 음색이 아주 잘 어울려 내 주요 레퍼토리가 되었다, 특히나 비 내리는 날은 운치가 더 바랄 나위 없이 그만이다.

 

 이 노래에 대한 항간의 스토리가 하나 있다. 공순이, 즉 공장 여공들의 애환과 고단한 노동을 위로하기 위한 노래라고 한다. 둘다섯은 구로공단의 행사에 자주 초청되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연결시켜 감정이입을 해도 공순이와 이 노래가 전혀 연결이 안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더 불러 보지만 글쎄다. 도무지 공장여공이 이입되지 않는다.

 <긴 머리 소녀>는 오세복이 아주 어렸을 때 작곡한 노래라고 한다. 여덟 살 때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여부는 알 수가 없다. 여덟 살이 사실이라면 신동 모차르트와 비견되는 천재가 아닌가. 어쨌든 소년 오세복이 공순이들의 애환을 염두에 둘 만큼 의식이 있었다는 추측은 무리다.

 후에 운동권에서 이 노래를 사용함으로써 원작자 의사에 상관없이 의식 있는 노래가 되었다. 그리고 둘다섯은 뜻밖에 노동자를 위한 의식 있는 가수가 되어 구로공단에서 노래를 하게 되었다. <아침 이슬>의 양희은의 경우도 그렇다.

 

 멤버 이두진 오세복의 이름에서 따온 <둘다섯>은 한때 팀 이름을 <2.5>로 개명하기도 했다.

 그들의 서정적인 노래들이 참 좋다.

 

 

 

 

 

오세복 작사 작곡 둘다섯 노래 : 긴 머리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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