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 밤바>에서 어린 리치 발렌스는 집 마당에 서서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면서 알 수 없는 포비아를 느끼곤 한다. 이는 비행기사고로 사망한 그의 전기를 그린 영화이기 때문에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영화적 암시 미장센이다.
탱고 거장 아스토르 피아솔라(Astor Pantaleon Piazzolla)는 하마터면 불의의 사고로 요절할 뻔 했다.
피아솔라는 아르헨티나 태생이다. 3살 때 그의 가족은 미국 뉴욕으로 이사를 갔다. 그곳은 이탈리안 마피아들이 활개를 치는 거리였다. 환경의 영향으로 피아솔라는 뒷골목 주먹 깡패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주먹을 믿어 장차 복서가 되리라 꿈을 먹었다. 그즈음 그 패거리 중에는 훗날 복서로 성공한 아이들이 있었다. 영화화 되었던 로키 마르시아노와 <성난 황소>의 주인공 제이크 라모타 등이 그들이다.
아들의 장래에 불안을 느낀 아버지는 음악의 길을 열어 주려고 생일에 반도네온을 사 주었다. 반도네온은 탱고를 연주하는 아르헨티나 고유의 아코디언이다. 피아솔라는 반도네온으로 클래식 등을 연습하면서 내재해 있던 음악성을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는 수소문 끝에 당시 탱고음악의 최고봉으로 활약하던 카를로스 가르델과 인연을 맺어 아들을 그의 문하로 들여보내게 된다.
피아솔라의 천재적 재능을 본 카르델은 그를 대음악가로 키우려는 야심을 갖고 애정을 쏟았다. 카르델은 당시 영화도 제작하고 있었는데 영화에 피아솔라를 출연시켰다. 극중에서 피아솔라는 자신의 반도네온 연주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카르델은 자신의 콘서트에 늘 피아솔라를 대동했고 무대에도 올렸다.
1935년 카르델은 전미순회공연을 기획했고 그 투어콘서트에 역시 피아솔라를 동참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피아솔라의 아버지는 장기간의 먼 원정을 걱정하여 아들의 콘서트 참가를 반대하였다. 선견지명이 있었는가, 신이 피아솔라를 사랑하였는가. 그 콘서트 투어중 비행기사고가 일어났다. 6월 24일이었다. 탱고의 거성 카르델은 유명을 달리했고 아버지의 만류 덕분에 피아솔라의 운명이 바뀌었다.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 사라질 뻔한 역사의 순간이었다. 그의 나이 24살이었다. 아르헨티나의 12월 11일은 국가지정 ‘탱고의 날’이다. 고 카를로스 카르델의 생일인 것이다.
60년대는 라틴 아메리카에 누에보 칸시온의 문화혁명이 넘치던 시기였다. 피아솔라도 탱고에 과감한 혁명을 시도했다. 단지 듣고 즐기기 위한 음악을 지양하고 사회와 부조리에 항거하는 음악을 추구했다. 기존의 탱고에 메스를 가하지 음악원로와 보수주의자들이 그를 맹비난했다. 탱고의 전통을 파괴하고 왜곡한다는 비판이었다.
피아솔라와 누에보 탱고는 아르헨티나가 아닌 유럽에서 열풍을 일으켰다. 그는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곳에서의 10여년은 그의 음악일생 중 가장 왕성하고 현란했던 기간이었다.
1985년 고국으로 금의환향했다. 그를 비난했던 고국과 고국 사람들은 열렬히 환영했다. 아르헨티나의 탱고를 세계의 음악으로 위상을 드높인 공이 혁혁했다. 비로소 그는 고국에서 존경과 환대를 받으며 안정된 음악인의 길을 걷는다.
1992년 7월 5일 탱고의 성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나이 71세였다.
피아솔라는 탱고를 진정한 음악예술의 차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 피가로
피아솔라 : 리베르탱고(Liebertan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