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노래하게 하고 음악으로 시를 쓴 사람, 프란츠 테퍼 슈베르트」
그토록 존경하던 베토벤의 옆에 묻힌 슈베르트의 묘비명에 이렇게 쓰여 있다 한다.
슈베르트만큼 철저하게 외롭고 불운했던 음악가는 없을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발할 기회조차 없었다. 운명 같은 가난으로 음악은커녕 제대로 된 학교교육도 받지 못했고 입에 풀칠할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워 31살 요절할 때까지 단 한순간도 풍족해 보지 못한 사나이였다.
그가 불세출의 음악가로 인정받은 건 사후였고 생전엔 그저 그런 가난뱅이 악사였다. 사망하기 전해에 발표한 가곡집 <겨울 나그네>가 큰 히트를 치면서 비로소 자신의 피아노를 갖게 되었다. 위대한 음악가인 슈베르트가 평생 피아노도 없이 살았다. 겨우 피아노를 가졌을 때는 이미 가난과 병으로 인생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조의 노래>를 남기고 겨울 나그네가 되어 떠나 버렸다. <백조의 노래>는 유작이 되었다. 평생 한번 만 운다는 백조.
겨울이 끝날 때쯤이면 더욱더 생각나는 슈베르트다. 우리는 그에 비하면 얼마나 부유하고 행복한지를.
슈베르트에게도 첫사랑이 있어 열일곱 살 때 테레제라는 소녀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고백도 못했고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그 실연의 아픔은 그해 140여곡의 가곡을 만들게 하는 원천이 되었다. 설사 그가 고백을 했더라도 세상 누구하나 알아주지 않는 가난뱅이 소년을 그녀가 받아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 알몸으로 내동댕이쳐져 아무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의 열정으로 음악을 탐구하다 비참하게 스러진 천재.
슈베르트 : 들장미
실연을 한 그해 작곡한 많은 가곡 중의 하나.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이 노래는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월계꽃>이라는 제목으로 배웟다. 같은 시로 작곡한 베르너의 <들장미>와 구별하기 위해서였는데 가사도 원곡과 다르게 번안해서 배웠었다.
한 소년이 장미를 보았다,
들에 핀 장미꽃.
너무도 싱싱하고 해맑아
소년은 가까이 보려고 달려갔다.
기쁨에 겨워 바라보았다.
장미, 장미, 붉은 장미,
들에 핀 장미꽃.
소년이 말했다. 널 꺾을 테야,
들에 핀 장미꽃!
장미가 말했다. 널 찌를테야,
나를 영원히 잊지 못하도록.
난 고통받지 않을 거야.
장미, 장미, 붉은 장미,
들에 핀 장미꽃.
거친 소년은 꺾고 말았다,
들에 핀 장미꽃.
장미는 자신을 방어하며 찔렀다.
하지만 외침 소리도 소용 없이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장미, 장미, 붉은 장미,
들에 핀 장미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