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결국 자기의 뜻대로 사람을 불러들인다.
로베르트는 어머니의 뜻을 따라 음악을 포기하고 라이프치히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거기서 당대 최고의 피아노 지도자인 비크 교수를 만나 그의 운명을 다시 음악으로 돌려놓았다. 생래 내재돼 있던 음악의 감성과 소질이 비크 교수를 만남으로써 인류는 좀더 고상하고 아름다운 음악예술을 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비크 교수를 찾아가 아들이 음악의 길을 포기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지만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젊은이를 버려두는 건 죄악이라는 비크 교수에게 오히려 설득되고 말았다. 본격적으로 슈만의 음악이 날개를 펴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비크 교수의 집에서 살게 된 슈만은 그렇게 해서 운명의 클라라를 만난다. 클라라는 열네 살이었다. 둘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클라라의 부모는 둘의 관계를 용납하지 않았다. 슈만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그의 뒷배를 봐주마고 어머니까지 설득하여 큰 음악가로 키우려는 비크가 딸의 남편, 즉 사위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반대에서 그친 게 아니라 가난뱅이 학생 녀석을 돌봐주고 가르치고 해놨는데 분수도 모르고 감히 자신의 딸을 넘본 슈만이 괘씸해서 미성년자유괴죄로 고소를 했다. 이후 오랜 법정공방이 있었다.
슈만은 너무도 과도한 연습으로 손가락을 부상당했다. 필생의 꿈이 피아니스트였는데 그 꿈이 좌절되었다. 그러나 슈만은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피아노를 못 치면 작곡을 하리라.
“길이 막힌 게 아니라 다른 새로운 길이 열렸다”
이 또한 운명이다. 슈만의 손가락 부상은 인류에게 신이 내린 선물이 되었다.
지루한 법정 쌍무 끝에 법원은 슈만의 손을 들어주어 둘은 드디어 결혼하게 되었다. 1840년 슈만 서른 살, 클라라는 스물한 살이었다. 슈만의 가곡 250여 곡 중 절반이 이 해에 작곡되었다. 클라라와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으니 창작의욕과 체력이 가장 왕성했을 것이다.
결혼과 함께 슈만의 음악인생은 그야말로 꽃길이었다. 어느 음악가보다도 화려한 날개를 달고 비상하던 슈만에게 검은 그림자가 찾아왔다. 이 가혹함도 또한 운명이리니. 슈만에게는 가족력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와 누이가 정신질환으로 사망했고 그것을 겪은 슈만은 언젠가 자신에게 찾아올지 모르는 그 그림자로 인한 불안으로 살았었다. 오히려 그런 번뇌 때문에 정신을 갉아먹었을지도 모르지만 기어코 그에게도 징조가 깃들고 증세가 조금씩 악화되었다.
그리고 46세에 정신병동에서 삶을 마감했다.
그의 주옥같은 수많은 가곡 중에서 백미는 ‘시인의 사랑’이다. 클라라와 결혼한 1840년 작품이다. 아름다운 사랑의 시작, 실연의 아픔, 사랑의 고통을 노래하는 16곡의 연가곡이다.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로 작곡하였다.
하이네는 사촌 여동생인 아말리를 사랑했지만 아말리는 그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 실연의 아픔을 담아 시집 <노래의 책>을 썼다. 그 몇 년 뒤 하이네는 이번엔 아말리의 동생인 테레제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이 연애에서도 실연하였다. (서양 음악사에는 테레제라는 이름의 여인이 많이 나온다. 하이네의 사촌도, 슈베르트가 생애 유일하게 사랑했던 소녀도, 하이든이 사랑했던 소녀도 모두 테레제다)
이 아름답고 아픈 사랑의 시를 바탕으로 필생의 위대한 곡으로 슈만이 만든 <시인의 사랑, Op.48>이다.
아름다운 오월에
온갖 꽃들이 피어나면
나의 마음에도
수줍게 사랑이 피어나리
아름다운 오월에
온갖 새가 노래하면
그대에게 고백하는
그리운 이 사랑
- 제1곡 아름다운 오월에
슈만 연가곡 <시인의 사랑>중 "아름다운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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