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나를 울게 내버려두오

설리숲 2017. 2. 28. 20:32

 남녀차별의 관습은 오랜 세월을 두고 지속돼 왔다. 비교적 성평등이 일찍 시작 됐다는 유럽에서도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것이 고작 1세기 전이다.

 헨델이 살았던 바로크시대에도 여성의 사회참여는 철저하게 제한되었다.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에서조차도 여성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성 바울의 교지에 의해 교회에서의 합창이나 공연에 여자는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이미 오페라라는 장르의 음악이 태동하여 바로크시대에는 널리 유행하고 있었는데 여성은 노래를 할 수 없으니 남자 가수가 대신 해야 했고 그 부작용으로 생겨난 것이 카스트라토였다. 남성을 거세해 고운 여자 목소리를 내게 하는 것이었다.

 

 몹시 가난한 부모가 아들만이라도 주리지 않고 배불리 먹고 살게 하려는 마음으로 생각해 낸 것이 자식을 고자로 만들어 궁의 내시로 들여보내던 슬픈 역사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헨델 시대에도 자식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비정한 부모들이 어린자식을 거세해 가수로 만들려는 일이 유행했다고 한다. 참으로 비이성적이고 반인륜적인 행태였다. 거세된 남자가 다들 가수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니 극히 소수의 몇 만 빼고는 평생을 불구로 살았다.

 

 영화 <파리넬리>는 그 당시 실존했던 인물의 슬픈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음악가로 성공하려는 형의 야심에 거세의 희생을 당한 파리넬리는 인간의 영혼을 뒤흔드는 목소리로 전성의 인기가도를 달리지만 불구라는 자괴감으로 삶은 불행했다.

 헨델은 이 최고의 가수를 만나 영국으로 함께 가려고 했지만 파리넬리 형의 집요한 반대에 계획이 무산되엇으며 이로 인해 파리넬리와 헨델은 지독한 반목의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파리넬리는 인간적으로는 헨델을 증오했지만 그의 음악을 존경하고 깊이 심취했다. 자신의 육체적 콤플렉스로 고통스러웠던 파리넬리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인 헨델의 노래를 부르고 싶은 열망으로 헨델의 악보를 훔치게 되는 것이다.

 

헨델은 끝내 이 불세출의 가수를 자신의 오페라 무대에 한번도 출연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날 울게 하소서

  내 가혹한 운명

 

 예술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청준 소설 <서편제>는 고차원적인 소리를 위해 아버지가 딸의 눈을 멀게 하는 이야기다. 예술은 결국 아름다움의 추구이다. 희생된 인생 불행한 삶에게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민주주의를 쟁취한다며 투신하는 투사의 뜻은 거룩하지만 어차피 죽어 없어지면 민주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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