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 앞에서 노인네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대략 2백여 명 되는 듯하다. 나는 보통의 노인으로 어른다운 사람에겐 어르신이란 호칭을, 나잇값 못하고 사리분별이 유치한 사람에겐 그냥 ‘노인네’로 호칭한다. 태극기 들고 나와서 대통령 각하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영락없는 ‘노인네’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데 태극기는 웬 거며, 그것까진 좋다 쳐도 해괴망측하게 성조기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게다가 군복은 또 뭐람.
이런 생각들로 운현궁 앞을 지나려는데 시위대 앰프에서 귀 익은 노래가 들려온다. 예전 70년대 TV드라마였던 <전우> 주제가다. 아 이 노래! 간단없이 그 시절로 날아간다.
당시 TV채널은 3개였다. 상업방송인 MBC와 TBC가 있었고 KBS는 공영방송이었다. 공영방송이었지만 실질적인 국가기간방송이었고 국영방송이었다. 보통 두 채널은 수신이 되지 않았다. 유선을 설치해야만 볼 수 있었다. KBS는 유선 없이 수신이 되었다. 그리고 시청료를 징수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청료를 징수해서 순수하게 방송만 했을까 의문이다. 정황상 독재정권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다.
어른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KBS를 좋아하지 않았다. 재미가 없었다. 군사정권 어용방송이었으니 프로그램 내용들이 딱딱하고 선동적이었다. 게다가 광고도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브라보콘이니 이브껌이니 쮸쮸바 같은 CF광고도 하나의 즐거움이었으니 이래저래 MBC나 TBC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딱 하나 KBS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모은 게 바로 드라마 <전우>였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전쟁의 참상과 라 소대장이 이끄는 국군 분대원들의 무공담, 그리고 따뜻한 전우애와 인간애가 있는 드라마였다. 아이들은 전우에 열광했다. 소대장으로 나오는 배우 라시찬은 최고의 영웅이었다. 주말에 방영되는 타잔보다도 훨씬 인기스타였다.
우리들의 놀이는 대개 전쟁놀이였다. 시시한 병정놀이가 아니라 정말로 전투를 벌였다. <전우>에서 나오는 멋진 장면들을 그대로 흉내 내며 총을 쏘았다. 각목으로 M1총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어깨에 메고 숲으로 들어가 구르고, 달리고, 나무줄기나 풀숲에 매복하여 일제히 튀어나오며 총을 쏘아댔다. 적의 총을 맞으면 <전우> 병사가 그러듯이 멋들어진 동작으로 쓰러져 죽었다.
옷이 흙투배기가 되도록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는 전우 분대원들처럼 일렬로 행진하여 마을로 돌아오며 이 노래 <전우>를 불렀다.
소대장 라시찬은 이 드라마가 방영되는 중에 사망하였다. 지병이 있는데다가 드라마 촬영 강행으로 병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후에 어른이 된 후에 알았다. 당시의 드라마는 대개 스튜디오 제작이었는데 <전우>는 특성상 야외촬영이었다. 매주 방영을 했으니 그 녹화작업이 살인적인 스케줄이었을 것이다. 지금에야 촬영시스템도 잘 돼 있지만 당시의 여건은 엄청 열악했을 것이다. 따지자면 라시찬은 업무상과로사로 법적인 보상도 받았어야 했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영웅 라 소위는 너무도 허무하게 우리 곁을 떠나 버렸다. 라시찬이 없는 <전우>는 어쩐지 맥이 빠졌고 시나브로 인기가 시들해져 갔다. 라 소위 후속으로 강민호가 분대를 이끌었지만 전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얼마 후에 종영하였다. 강민호도 그 10여년 후에 고인이 되었다.
주제가는 보컬중창단 별넷이 불렀다. 원래는 ‘사운드포(Sound Four)’라는 그룹명으로 시작했는데 박정희정권의 우리말순화정책으로 ‘별넷’으로 고쳤다가 한 멤버가 빠지면서 ‘별셋’이 되었다.
그런데 박근혜탄핵 반대한다는 시위에 왜 이 노래를 트는지 그것도 이해불가다. ‘노인네들’의 뇌세포는 어떻게 다른 건가. 성스럽고 고결해야 할 대한민국 태극기의 이미지를 이토록 부정적으로 추락시키고 훼손하는 이 사람들이 자칭 애국자라고 한다. 애국자가 아니고 북한의 이념에 동조하는 것이니 이게 소위 이적단체고 빨갱이들 아닌가. 에구.
어쨌든 이 노래 <전우>를 어릴 때 무척 좋아했었고 지금도 들어 보니 참 좋다.
별넷 : 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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