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가는 길목에 카센터가 하나 있다. 주인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늘 음악이 흘러나온다. 특이한 건 음악들이 주로 가곡이다. 카센터와 가곡. 매치가 안 된다. 센터 앞 도로엔 차들이 쉴 새 없이 질주하는 소음. 아름다운 가곡이지만 지나가며 언뜻 듣는 음악은 그리 감미롭게 들리지는 않는다. 아무튼 특이한 카센터다.
비가 내리는 날 마트 가는 길에 예의 카센터에서 가곡을 듣는다. 갈 때는 <그리움>이고 돌아올 때는 <성불사의 밤>이 흘러나온다. 비 탓이리라. 어쩐지 센티멘털해져 노래들이 제법 감성을 자극한다. 괜찮군. 문득 성불사를 찾아가고 싶어졌다. 이런 즉흥적인 욕구가 좋다. 혼자 사는 이가 누리는 특권 같은 것이다.
이은상이 노랫말을 지은 성불사는 해주 사리원에 있는 절이다. 노래로 인해 그윽한 수행도량일 것 같은 이 사찰은 그러나 친일대처승들의 소굴이었다. 친일분자의 온상이었고 주지 이보담은 그 우두머리로서 민족과 겨레에 악성종양 같은 존재였다. 노랫말을 지은 이은상이나 작곡을 한 홍난파 또한 대표적인 친일인사들이니 그 많은 절 중에서 성불사를 노래의 소재로 삼은 건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광양의 성불사는 이 노래와 하등 연관이 없다. 북쪽은 어떤지 모르지만 남쪽만도 성불사란 이름을 가진 절이 수십 군데다. 成佛. 성불은 곧 해탈이니 불교의 근본이자 존재이고 의미다. 성불이 절 이름으로 많이 쓰이는 건 우리의 발원서원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성불계곡은 온통 안개천국이다. 고요하다. 비가 내리는 날은 산새도 휴식이다. 겨울 갈수기라 계곡의 물소리 끊어졌다. 산사의 독경소리 들리지 않는다. 삼라만상이 적요.
미풍이라도 건 듯 불면 청량한 풍경소리 들릴 듯 한데 바람 한 점 없는 시방(十方)은 오직 고요다.
무고집멸도! 無苦集滅道
안개 고요 적막 무념 무욕
성불사, 비 내린다.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 : 성불사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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