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같은 해 태어났지만 그는 곧바로 감금되었다. 내가 그를 만난 건 20년 후였다. 그전에 나는 그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눈물로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자신의 앞날을 알았을까.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빨갛게 멍이 들어 버린 동백아가씨.
1987년 들끓는 민주화의 소용돌이 속에 많은 대중가요들이 해금되었다. 그때 처음 알게 된 노래 <동백 아가씨>다. 1964년 발표되어 잠깐 그 꽃을 피웠으나 권력의 힘에 의해 20년을 깊은 지하에 묻혀 있었다.
노래를 금지한 박정희였지만 정작 그 자신은 동백 아가씨를 무척 좋아하고 애청했다고 한다. 훗날 이미자는 아주 여러 번 청와대에 불려가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술회했다.
박정희는 갔지만 그 예리한 칼끝은 여전히 국민들 가슴을 향해 있다. 아버지의 못 다한 야망을 이으려는 야심인가. 박근혜 정권은 끊임없이 국민을 감시하고 사찰하고 있다. 이 21세기에 말이다. 블랙리스트? 이 나라의 국민들은 어찌 이리 복이 없는가. 아니다. 실은 복이 없는 게 아니라 스스로 멀리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나라의 정치수준은 곧 그 국민의 수준이다. 그 사람을 옹위한 건 바로 우리들이다.
<동백 아가씨> 노래비가 왜 생뚱하게 부산 우동에 있는지 모르겠다. 작곡가 백영호가 부산 출신이긴 하지만 그것과 연관 짓기는 무리다. 노래비가 있는 해운대로(路) 지근거리에 동백섬이 있긴 하지만 그것과도 연관 짓기 어렵다. 앞면에 노랫말만 적어 넣은 지극히 단순한 노래비가 보통 뒷면에 있기 마련인 건립취지라든가 연대, 건립주최자 등 그 어떤 설명도 없다. 깔끔하게 동부아파트를 배경으로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저 혼자 서 있다. 그나마 주위에 동백나무가 여러 그루 있긴 하다.
노래 <동백 아가씨>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끼칠 화가 두려워 감히 내놓고는 못하고 남몰래, 그것도 사람의 왕래가 없는 길가에 노래비를 세운 이름 모를 백성의 갸륵한 위업이 아닐까. 아무도 몰래 어린 단종임금의 시신을 수습한 충신처럼.
비운의 <동백 아가씨>는 노래비마저도 비감하게 서 있었다.
이 노래를 왜 금지곡으로 탄압을 받았는지는 설왕설래 여러 설이 있지만 여전히 명확한 건 없다. 이미자라는 불세출의 가수를 탄생시킨 전설만으로 남을 것이다.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이미자 노래 : 동백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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