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설리숲 2016. 10. 30. 21:33

 

 바이올린의 귀재 니콜로 파가니니 (1782-1842).

 그는 천부적인 음악성을 무기로 하고, 기이한 행동과 신비주의로 철저한 이미지관리를 통해 수많은 여성을 편력하였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고 특히 그에게 여자는 핗수적인 아이템이었다.

 

 그런 그에게 약 3년여의 공백기가 있었다. 여자와의 염문도 없었다. 그의 일기에는 "농장에서 일을 했고 취미로 기타를 쳤다"고 적혀 있다.

 농장의 여주인은 과부였다. 음악과 세상사에는 공백기였지만 그의 여자편력은 이곳에서 주욱 이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바이올린의 파가니니는 또한 기타의 대가였다. 그의 대부분의 기타곡이 농장에서 여자와 살던 때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과부와도 이별을 하고 농장을 나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파가니니는 이 여인에게도 큰 미련은 없었던 것 같다.

 

 그후 파가니니는 루카에서 궁정연주자로 3년동안 생활하면서 당시의 권력자 나폴레옹의 여동생 엘리자 보나파르트와 연애를 한다. 엘리자는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권력욕이 강하고 질투도 심했다. 오빠의 권세를 빌어 연인 파가니니를 근위기병대장으로 임명하여 자기 수하로 두었다.

 1807년 나폴레옹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그녀는 오빠를 위한 곡을 만들아고 부탁했는데 별쭝맞게도 G선 하나만으로 연주하는 곡이어야 한다는 요상한 조건을 붙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곡이 <나폴레옹 소나타>다.

 그녀는 또한 파가니니 주위에 항상 어른거리는 여자들을 몹시 질투했다.

 

 그후 파가니니는  안토니아 비안키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이 여자는 파가니니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결혼을 생각한 유일한 여자였다고 한다. 그녀와의 동거로 아들을 얻었는데 출산 후 안토니아는 180도 변해 허영덩어리가 되어 갔다. 결국 그녀와도 영원한 사랑을 맺지 못하고 파혼하였다. 아들 아킬레스는 파가니니가 양육하고 안토니아에게는 위자료와 가진 돈을 모두 주었다.

 

 이 아킬레스는 파가니니가 사망했을 때 결정적으로 아들 노릇을 하게 된다.

 악마와 거래를 했다는 생전의 루머와 함께 자신의 신비주의적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벌였던 기이한 행색과 언행들이 기독교지상주의였던 당시의 사회에는 처벌대상이었다.

 그가 사망하고 묻힐 곳을 구하지 못해 다섯 번이나 묘지가 파헤쳐져 이사를 다녀야 했다. 살아서의 기인은 죽어서도 기행의 길을 걸은 셈이다.

 교회 묘지에 묻히면서 비로소 영원한 안식처가 되기까지 그 아들 아킬레스는 백방으로 다니면서 일생을 그 일에 전념하였다.

 

 

 

파가니니 바이올린과 기타을 위한 소나타 6번 O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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