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녀가 되겠어요.
문득 입술에 떠오르는 말이다.
- 수녀가 된다.
그렇지. 그것은 그녀의 마지막 인사였다.
먼 옛날의, 이제는 종소리처럼 사라져 버린, 창창하고 빛나는 아름다운 염원을, 그 여인을,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 그러나 서로 헤어졌다. 바보들...
가슴 저리게 사랑하고 아프게 헤어진 사랑 이야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표현하지만 기실 그것은 너저분한 불륜 이상은 아니다. 내게는 아름다운 로맨스일지 몰라도 타인의 눈은 추잡하다. 설령 그가 유명한 시인이고 아름다운 글을 토해냈 예술가일지라도 그의 불륜 이야기를 미화해선 안 된다.
오늘은 시인 박목월 이야기를 하련다. 김성태 작곡의 노래 <이별의 노래>의 노랫말을 지은, 너무도 유명해서 교과서에서 배우고 익혔던 청록파 시인인 그이다. 이 노래에 얽힌 그의 연애 이야기다.
6.25 피난시절, 그의 시를 좋아해 흠모하던 한 자매가 목월을 자주 찾아왔다. 언니가 더 적극적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목월이 상경하자 자매도 상경했다. 적극적이던 언니는 결혼하고 동생이 목월을 가까이하며 드나들었다.
1954년경부터 두사람은 연애의 감정을 느끼며 서울의 밤거리를 쏘다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박목월은 유부남이었다. H양과 연애를 하면서도 그것에 자책감을 느껴 나름 고민했다고 한다. 자신의 친구를 시켜 H양을 설득해 자신을 단념하게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겠지요. 저는 다만 박 선생님을 사랑할 뿐 이 이상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이 무상의 사랑을 누구도 막을 권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H양은 그렇게 친구를 돌려보냈다고 한다.
곧이 들리지 않는다. 유부남인 자신이 죄책감을 가졌으면 자신이 어떻게 해결할 일이지 친구를 시켜서 떼논다? 일말의 런런 생각은 있었다 쳐도 본 마음은 아가씨가 설마 자기와 떨어지려 하겠느냐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자기 딴에는 스스로 면책의 구실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의 도피처는 제주도였다.
여름이 가고 가을에 두 사람은 제주도에서 동거를 하였다. 넉 달쯤 살았을 때 목월의 부인(유익순)이 그들을 찾아왔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보퉁이 하나와 봉투 하나를 내놓았다. 보퉁이에는 두 사람이 입을 겨울 한복 한 벌씩, 봉투에는 생활비가 들어 있었다.
부인이 이렇게가지 나오는데야 아무리 철면피라도 면복이 없어 H양은 목월을 단념하였고 목월은 가정으로 돌아갔다.
가슴 아픈 사랑, 가곡 <이별의 노래>는 이러한 사연으로 지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녀가 바다를 건너왔을 때 나는 당황했을 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길을 걸으며 궁리해 보앗지만 숨어서 살 곳이 이 쇼ㅔ상에는 없을 듯했다. 바보들.
눈물에 젖은 그녀의 긴 눈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얼굴을 외면한 채 말이 없었다.
- 수녀가 되지요.
그리고 그녀는 가 버렸다. 차창에 얼굴을 부비며 울고 떠났다.
그후로 소식이 막혔다. 산과 바다와 구름이 가로놓인 채 어언간 삼십여 년.
가을을 비가 뿌린다. 숙연하게 내리는 빗소리에 문득 붓을 놓고 귀를 기울인다.
이제 인생도 살만큼 살았다.
지난 시간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더욱 짧을 것이다.
다시 그를 만날 기회는 없을 것이며 만나도 서로의 얼굴조차 기억할 것인가.
그 후론 나의 회한의 강물도 흐르만큼 흘러 버리고 바닥이 드러났다.
이렇게 우리의 인연은 영영 그쳐 버릴 것인가.
박목월 <가을의 사람( 1962년)>중에서
이와는 또다른 이야기가 있다.
가곡 <떠나가는 배>를 작사한 시인 양중해의 이야기에 따르면 (양중해 시인은 제주도에 살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문학소녀와 함께 제주도로 건너온 박목월에게 자신이 칠성통에 여관방 하나를 얻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H양의 아버지가 두 사람을 찾아와 딸을 설득해 결국 아가씨가 아버지를 따라 떠나면서 두 사람의 행각이 끝이 났다고 한다.
제주도를 떠나기 전날 H양은 도움을 받은 목월의 지인들을 위해 손수 밥을 지어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덧붙여 가곡 <떠나가는 배>도 두 사람의 사랑(? 혹은 불륜)에서 모티프를 얻어 지은 노래라는 설도 있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 겨울날 그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었다. 그녀를 만나고 돌아온 목월은 이렇게 소감을 적었다.
30년 가까운 세월의 저편 끝에서 찾아오는 한 사람의 나그네 같은 심정이었다. (종말의 의미)
예술가들의 연애편력은 늘 관심을 받기 바련이고, 보통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미화되곤 한다. 우리가 아는 음악가들, 화가들, 또 문학가들의 이력을 찾다 보면 그러하다. 그래 봤자 실상은 추저분한 불륜일 뿐이거늘. 청마 유치환도 유명한 불륜 이야기가 있다. 다음에 그의 이야기를 포스팅하려 한다.
가을의 쓸쓸하고 허무한 서정를 느끼게 하는 명곡으로만 알던 이 노래도 그 이면엔....
더구나 박목월은 친일행각을 한 시인이다.
박목월 작사 김성태 작곡 : 이별의 노래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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