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회든 조직이든 우열의 개념은 다 있다. 슬프게도 진리와 미를 탐색하고 추구하는 예술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학교 때 한번쯤은 합주라는 걸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악기지정에는 선생님의 권력이 절대적이다. 우등상을 받는 아이라거나 부잣집 아이라거나 여러 종류의 이유로 선생님의 관심 안에 있는 주류와 그 반대의 비주류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멜로디를 담당하는 악기들은 주류 아이들에게 배당한다. 공부도 못하고 평소 존재감도 없는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비주류 아이들에게는 주로 타악기를 배정한다. 열등 개념에 속하는 악기들은 큰북 작은북 심벌즈 탬버린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 등이다. 그러니 어느 반 아이들이 합주를 하는 걸 본다면 그 악기에 따라 그 아이의 반내 위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이런 천박한 교육관이 아이들에게 주는 영향은 대단히 심각한 것이다. 모두 다 중요하고 빠져서는 안 될 악기들이라고 항변할지 몰라도 분명 선생님의 머릿속에는 처음부터 악기의 우열개념이 있었고 거기에 맞춰 아이들도 적당히 배정했을 것이다.
이후로 우리는 트라이앵글과 캐스터네츠를 악기로 인식하지 않게 되었다. 분명 필요한 악기가 아닌 것이다.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존재, 즉 따라지들이 분명 있음을 우리는 이미 국민학교 때부터 학습을 했다.
프로 세계인 오케스트라 조직에서도 이런 우열의 개념은 상존한다. 주 선율을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그 상위에 속하고 역시 타악기주자는 그 하위에 속한다. 오케스트라 연주자 자리 배치를 보면 한눈에 그 서열이 보인다. 앞줄과 뒷줄의 차이가 그 서열의 순위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있어도 더블베이스협주곡은 없다. 어느 때 콘트라베이스를 의인화하여 그 비애를 그린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같은 단원이라도 그 보수가 차이가 있음을 서글퍼 한다.
그 오케스트라에 탬버린이나 캐스터네츠 트라이앵글은 없다. 분명 그 악기들은 따라지임이 틀림없다. 아 물론 전혀 없지는 않다. 타악기 주자가 앞에 고물상 같이 여라 가지를 늘어놓고 악보에 따라 한 번씩 쳐 주기는 한다. 필요한 악기지만 관객이나 주자들 자신들에게도 존재감이 없는 악기들이다.
캐스터네츠. 이 따라지 같은 악기가 훌륭한 음악이 되는 것을 보았다. 멕시코 태생의 무희 루세로 테나(Lucero Tena)는 캐스터네츠로 아름다움을 창조한 연주자다. 원래 플라멩코 댄서들은 춤을 출 때 탭댄스와 캐스터네츠 연주를 같이 한다. 루세로 테나는 춤과 별개로 캐스터네츠 연주만으로도 화려한 무대를 만들었다.
어린아이들에게조차도 천대받던 캐스터네츠가 그녀의 손에서 최고의 예술이 되었다. 예술의 세계에도 우열은 존재하지만 그 열등을 최고의 경지로 탈바꿈시키는 것도 또한 예술가임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위대한 사람들이다.
루세로 테나는 젊었을 적에는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화려하고 정열적인 춤을 추었다, 물론 손에는 캐스터네츠를 들고. 이젠 나이가 들어 춤은 못 추지만 대신 캐스터네츠 연주만으로 여전히 열정적인 공연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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