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 남자들은 유난히 고독해하고 우수에 빠졌으며 여자들은 너도 나도 버버리코트를 입고는 창밖에 나가 서서 청승을 떨었다. 대중가요가 불러온 신드롬은 그렇게 한 시대의 문화를 훑고 지나간다.
<창밖의 여자>는 모든 면에서 한국 가요계의 커다란 획을 그은 노래가 되었다. 위대한 슈퍼스타의 탄생이었고, 음반은 최초로 100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이전까지 포크송이나 컨트리 등으로 이어져 온 대중음악은 이 음반을 기점으로 다양한 장르의 시대를 열며 보다 풍성하고 완성도 높은 문화를 누리게 되었다.
이 노래는 배명숙 작사로 되어 있는데 논란이 많다.
31살에 요절한 천재 시인이 있었다. “민부는 우리 시대에 섬광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환영 같은 시인이다” 시인 이근배가 극도로 찬사를 한 민부는 곧 김민부요, 장일남 작곡의 유명한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노랫말을 지은 시인이다.
17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석류>, 18살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균열>이 당선되었다. 이미 고등학생 때 <항아리>라는 시집을 출간하였다.
그는 천재성을 지닌 시인이었지만 생계를 위하여 문학이 아닌, MBC와 TBC 등 방송국에 종사하며 스크립터로 일하고 있었다. 순수문학에의 열정만큼 그런 자신의 처지를 늘 자탄하고 자괴하며 살았다 한다.
석류
불타오르는 정열에
앵도라진 입술로
남 몰래 숨겨온
말 못할 그리움아
아 이제야 가슴 뻐개고
나를 보라 하더라
나를 보라 하더라
이 시 <석류> 역시 장일남이 곡을 붙여 가곡이 되었다.
김민부는 집에 화재가 나서 그 화를 입어 31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1972년 10월 27일 토요일이었다. 스스로 ‘문학의 오발탄’으로 비하하며 허랑해 하던 짧은 생애였다.
김민부의 사후 두 가지 논란이 불거졌다.
하나는 자택의 화재가 단순사고인가 아니면 자살인가 하는 논란이다. 늘 자신의 처지를 비판은 했지만 워낙 낙천적이었고 직업인 방송작가의 일도 좋아했다고 한다. 자결을 할 만큼 비관적인 정서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다른 하나의 논란은 이 포스트의 주제인 노래 <창밖의 여자>이다. 당시 MBC 사장 비서실에 근무하던 한 여사원이 김민부의 글을 좋아해 그를 많이 따랐다고 한다. 작가실에 자주 찾아왔다고 하는데 김민부가 글을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종이를 구겨버리는 일이 많았다. 여인은 그 파지마저 고스란히 주워갈 정도로 광팬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민부의 사후에 문제가 생겼다. 그 여인은 그후 <창밖의 여자>라는 소설을 썼고 이 소설이 어느 라디오에 드라마로 방송되면서 승승장구 돈과 명예를 잡는다. 그녀가 바로 배명숙이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는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노래가 그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쓰이면서 역사가 만들어졌다.
김민부의 부인이 우연히 이 소설을 접하고는 이의를 제기했다. 부인 이영수 여사는 남편 생전에 원고를 타이핑해주곤 했는데 배명숙의 소설이 자기가 타이핑해주던 원고와 글 한자 한자 틀리지 않게 똑같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실을 추궁하고 항의하였는데 배명숙 작가가 완강히 부인하고 거부하는 바람에 더는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철저히 밝혀 시시비비를 가렸을 테지만 그때만 해도 저작권이나 표절 등의 통념과 개념이 어설픈 시절이라 그냥 논란으로만 남아 있다.
일방적인 한쪽의 이야기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배 작가가 김민부 시인의 파지를 죄다 수거해 갔다는 건 사실이다. 아마 이 부분에서의 의심정황이 논란이 되는 것 같다.
어쨌든 비운에 간 천재 시인을 안타까워하며,
다음에 가곡 <기다리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도 써 보려 한다.
배명숙 작사(?) 조용필 작곡 노래 : 창밖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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