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마스네의 명상곡

설리숲 2016. 8. 29. 01:46

 

 

 타이스의 명상곡이라니? 제목이 좀 웃겼다. 타이스라 하면 그 당시 아이들이 죄다 입고 다니던 옷이었다. 여자아이들은 치마에 하얀색 타이스를 입었고 남자아이들은 반바지 속에 파란색 타이스를 입었다. 그런데 이 음악 제목이 타이스의 명상곡이라네. 타이스가 명상을?

 이 곡은 내 꼬마 적부터 너무나도 유명해서 라디오를 들어도 무시로 나오곤 했다. 물론 제목도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 누구 작곡인지도 모르고 그저 <타이스의 명상>이었다.

 

 창피하게도 나는 어른이 되고도 훨씬 후에야 이 곡이 오페라의 한 곡인 것을 알았고 그 작곡가가 마스네라는 것도 더불어 깨쳤다. 물이나 공기 따위는 늘 가까이 있어 그 존재감을 모르고 살듯이 이 음악 또한 어렸을 때부터 워낙 자주 접해 왔으니 그 존재에 대해서 무관심했던 것이다.

 

 이 오페라의 제목은 <타이스>. 작곡자는 쥘 마스네로 비제를 잇는 프랑스의 대 음악가다. 많은 오페라와 기악곡 등을 만들었지만 그러나 우리는 오로지 이 명상곡 하나만 알고 있다. 마스네 하면 명상곡이다. 글린카 하면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 하나만 알 듯이 말이다. 오페라 <타이스>의 한 곡이라는 걸 알게 되어도 이 오페라가 어떤 내용인지 명상곡 말고 어떤 노래가 있는지 알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아주 유명하지만 빠빠밤 빰~ 빠빠밤 빰~ 하는 소절만 알지 전곡, 아니 1악장만이라도 한번 끝까지 들어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

 

 아나톨 프랑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다. 타이스는 극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우리가 옛날 입고 다녔던 그 파란 타이스가 아니다. 지극히 종교적인 내용이다. 수사가 나오고 그 반대 개념인 무희가 나온다. 타이스는 무희다. 사랑의 신을 좇을 것인가 신의 사랑을 좇을 것인가 하는 이원론적인 번민과 인간근본의 욕망을 그린다.

 수사 아다니엘은, 세속적이어서 많은 인간들을 타락으로 물들이고 있는 무희 타이스를 기독교의 품으로 인도하기 위해 설득하고 교화하려 한다. 그 결과 타이스는 점점 신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그와 반대로 아다니엘은 타이스의 미모와 관능적인 매력에 도취되어 가고 만다. 이 유명한 <명상곡>은 타이스가 세속과 신앙의 갈림길에서 번민하는 것과 병행하여 아다니엘이 신과 관능적인 욕망 사이에서 번민하는 대목에서 연주되는 곡이다. 곡 하나로 많은 상징성을 부여하는 셈이다.

 

 이러저러해서 결국은 타이스는 수사의 바람대로 기독교에 귀의하지만 수사 자신은 타이스로부터 비롯된 원초적인 욕망 때문에 결국 파멸하고 만다는 비극적인 결말의 이야기다.

 

 이러한 내용들을 대충 알고 듣는 <명상곡>의 느낌은 한층 새롭다. 감성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 같다.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나 역시 이 오페라 중에서 아는 건 이 곡이 전부고 들어본 것도 역시 그렇다. 이럴 때마다 반드시 들어봐야지 하곤 하지만 그거 실행에 옮기지 못하리란 건 스스로 안다. 좋아하는 책이 있어 두고두고 보겠다고 서가에 꽂아두지만 한번 꽂힌 책이 두 번 세 번 나오는 일은 드물다. 시간이 없다. 핑계가 아니다. 책 읽을 시간이 있다면 도서관에도 많고, 서점에도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안 읽은 많은 책들이 있으니 굳이 서가에 있는 걸 뽑아보게 안 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언제 한 들어봐야지 벼르지만 시간이 없다. 시간이 생기면 자꾸 귀에 착 감기는 노래들이 먼저 다가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대중음악 말고 순수 클래식만 하더라도 바로크시대부터 근대음악까지 그 많은 곡을 평생을 아무것도 안하고 음악만 들어도 다 듣지 못하고 생을 마친다.

 

 하지만 나는 또 확신 없는 확신을 한다. <타이스>의 음악들을 꼭 들으리라. 다는 아니더라도 아리아만은 섭렵하리라. <타이스>의 아리아는 르네 플레밍이의 노래가 좋다는 정보 정도는 알고 있으니 한번.

 어줍게 자기변명을 하자면, 모차르트 등 여타 음악가들은 수많은 히트곡들이 있다. 그건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이고 곧 그의 음악이 좋다는 뜻이다. 마스네가 이 명상곡 말고는 사람들이 아는 곡이 없다는 건 그의 음악이 그리 사람들을 매료시키지 못한다는 말도 되겠다. 물론 마니아들은 있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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