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영원한 DJ 오빠, 김광한

설리숲 2016. 7. 12. 16:40

 

 내 청춘시절은 팝으로 열정을 사른 시절이었다. 비틀즈부터 아바를 지나 마이클 잭슨 런던보이스까지 팝의 세계는 클래식음악만큼 무한했다. 나나 무스쿠리를 들으며 고독을 치유했고 스콜피언스에게서 삶의 진중함을 배웠다. 이 놀랍고 경이로운 세계로 이끌어준 것은 김광한이었다.

 

 그는 음악가다. 노래를 하거나 연주를 하는 사람만 음악가는 아니다. 음악을 찾아내고 탐구하여 대중에게 소개하고 들려주는 것도 음악가다. 김광한은 자신이 DJ라 불리길 원했다. 맞다. 그는 위대한 DJ였다. 하지만 또한 음악가였다.

 

 그의 입지전적인 이야기는 유명하다. 밥보다 팝을 좋아한 사나이, DJ가 되기 위해 갖가지 천한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팝음악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들. 그 열정과 착실한 준비로 훗날 그는 가장 유명한 DJ가 되었다.

 

 지금은 역전되었지만 그 당시는 FM라디오는 거개가 팝뮤직 프로였다. 팝의 수준은 국내대중가요보다 다양하고 품격이 높았다. 대중소비도 많아 자연 라디오프로의 수요도 팝음악이 월등 많았었다. 매일 오후 두시에 라이벌격인 프로그램이 있었다. MBC에는 <김기덕의 두시의 데이트>KBS에는 <김광한의 팝스타이얼>이었다. 소비자 취향이 달라 어느게 좋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팝스다이얼 열혈팬이었다. 김기덕 프로는 음악보다는 말이 많았고 진행자의 장난기 많은 멘트가 내게는 별 매력이 없었다. 김광한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멘트와 매끈한 진행이 좋았고, 무엇보다도 팝음악에 대한 해박한 상식과 지식을 전해 주었다.

 보통 음악선곡은 피디와 작가 등 스태프들이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팝스다이얼은 DJ인 김광한이 직접 선곡하였다. 많이 알려지고 많이 들었던 노래보다는 우리가 접할 기회가 없는 음악들까지 해설을 곁들여 들을 수 있었다. 그게 DJ의 주관적인 선호도에 의한 선곡이 되어 오히려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하였지만.

 

 내 청춘시절의 문화코드는 김광한과 팝스다이얼이 전해주는 팝이었다. 불멸의 스타 마이클 잭슨이 전면으로 부각한 1984년은 팝의 최고의 해였던 것 같다. 비디오플레이어의 보급과 함께 뮤직비디오가 선풍을 일으키며 그 무렵 역사를 시작했고 편곡 편집기술과 엔지니어링이 눈부시게 진화하여 보다 세련된 음악이 쏟아져 나왔다. 그 영향으로 국내대중음악도 한층 더 품격이 올라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청취자에 대한 팬서비스의 일환으로 김광한은 전국을 순회하며 뮤직비디오쇼를 열었다. 춘천에서 우상 같은 그를 직접 보았을 때의 기분은 어찌 말로 표현할까. 더구나 그와의 영광스런 악수는 여전히 내 손에 남아 있다.

 

 지난 79일은 그가 떠난 지 1주기 되는 날이었다. 작년 그의 부고를 접하고 얼마나 허망하고 우울했던가. 내 생애의 어느 한 곳이 비어 버린 것 같은 슬픔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를 돌아보니 나 역시 나이가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걸 깨달았다. 시나브로 움직이던 세월은 어느 날 보니 낯선 세상에 훌쩍 건너와 있었던 것이다.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 두렵고 허무하지만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기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를 설레게 했던 그 시절의 팝스다이얼 시그널 음악은 Jon & Vangelis<Back To School>이다.

 

 

            

 

 

 

 Jon & Vangelis<Back To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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