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그대 지리산에 가 보셨나요

설리숲 2016. 7. 7. 15:59

 

 

 

 

 

 

 천왕봉에서 일몰을 보고 싶어. 참 신비로울 거야 그치?

 

 어느 저녁 산책길에서 우연히 나온 한 마디에 바로 그 자리에서 스케줄을 잡았다. 이왕이면 달도 보게 보름께로 하면 좋겠다 하여 날을 잡았다. 그게 장마가 시작되는 그 어름이었다.

떠나기로 한 날이 가까워지며 하루에도 여러 번 일기예보를 점검해 보지만 지리산과 그 일대에 큰 비가 내리리라는 예보는 한결 같았다. 그래도 어쨌든 계획을 포기하진 않았다. 목적이 일몰이지만 그런 기회는 다음에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가 아니라 누구랑 가느냐에 의미가 있다.

 

 

두어 차례 큰비가 지나가고 천왕봉 오르는 아침엔 조금은 누꿈해졌다. 이따금 회색구름 뒤로 해가 보이기도 했다. 숲속은 온통 안개다. 먼 과거의 동화 속인 양 신비롭다. 내내 안개 속을 휘저은 머리가 촉촉하게 젖었다. 더운 여름이지만 날씨 덕에 덥지 않아 좋다.

 

역시 예보대로 날은 궂고 천왕봉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온통 잿빛 파스텔톤이다. 안개와 구름은 쉴 새 없이 능선과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위엄을 과시한다. 안개로 시작한 첫날의 여정은 안개 속에서 저물어갔다. 장터목에서의 하룻밤. 보름이지만 삼라만상은 칠흙 같은 어둠과 고요.

 

 

 

 

 

 

 

 이른 아침 일어나니 날씨는 여전히 회색인데 발아래는 구름의 바다다. 아 저 장관을 무슨 단어로 표현할까. 그 앞에서는 미물 같은 사람임을 절감할 뿐.

어차피 일몰과 일출은 기대도 하지 않고 왔으니 그래도 이른 아침 천왕봉에는 가 보자고 다시 높은 곳을 향하여 오른다. 그 정상에 서서 느끼는 희열감은 별거 아니었다. 그 순간은 대한민국에서 내가 자장 높은 곳에 잇다는 뿌듯함 하나. 내내 까마귀 너댓 마리가 천왕봉 상공을 날아오르며 이따금 바위에 내려앉는다. 까마귀가 이 높은 곳까지 어인 나들인고. 가 보지 않은 남아메리카 안데스의 콘도르를 보는 느낌이 이런 걸까. 그곳을 여행했던 동행인은 그곳 근처까지 가기는 했지만 콘도르를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아침을 먹는데 비가 시작됐다. 빗발은 점점 거세지고 광풍도 몰아친다. 우비 등 맨드리를 단단히 하고 우중으로 들어간다. 멀리서 보면 우리가 자연 속의 한 풍경으로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세석산장에 오는 동안, 아니 그날 저녁까지 내내 비는 쏟아졌다. 어스름이 시작될 무렵 드디어 날이 개기 시작햇다. 초저녁 별과 달이 문드문득 나타났다가 이내 몰려오는 안개구름에 가려지곤 했다. 어쩌면 내일 아침엔 쾌청해 임출은 볼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밤새 달과 별은 나타났다가 가여지고 했을 테지만 일찍 잠자리에 들어 한 번도 밖에 나가보진 않았다.

 

 

 다시 새벽. 하늘은 어두운데 별이 총총하다. 아 오늘은 일몰을 보겠구나. 랜턴을 가까운 촛대봉으로 오른다. 달은 없어도 보름께라 사위가 어둡지는 않아 곧 랜턴을 끄고도 길을 갈 수 있었다.

 천왕봉의 일출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삼대가 복을 지어야 한 번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이다. 천왕봉 말고 촛대봉의 일출도 장관이라는 세석산장 직원의 전언이었다. 드디어 천지가 어둠을 밀어 열면서 동쪽 땅속에서 불덩이가 오르기 시작했다. 드넓은 구름의 바다 위에 용솟음치는 생명의 원천이다. 감동이다. 이 시간에 이곳에 서서 저 위대한 역사를 본다는 것은.

 나는 어디서 왔을까. 어디로 갈까. 다가온 운명은 그냥 받아들여라. 순종하며 사는 게 인간답고 동물적이며 생명 가진 것들의 아름다움이다.

 

 

 

 

 

 

 

 

 

 나무말미였다. 거림골을 통하여 하산하는 동안 그리고 그 이후로 며칠을 쨍쨍 맑은 날이 이어졌다.

 

 담뿍 비 맞은 초목들이 눈부시게 싱그러운 아침이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

 세석산장 방명록에 이렇게 적어 놓고 내려왔다.

 What A Wonderful World!

 

 

 

 그러나 그대 지리산에 아무 때고 가시라. 일상이 지루하고 머리가 고단할 때, 암때나 가셔도 지리산은 그대를 받아준다.

 

이원규 시 안치환 작곡 노래 :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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