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산 너머로 졸음에 겨운 구름들이 하품을 하며 돌아눕고,
눈부신 해의 비늘들이 호구 가득히 떨어져 내려
은빛 고기떼처럼 쓸려 다니고 있었다.
이외수 소설 <황금비늘>중에서
누구에게나 물고기비늘처럼 눈부시게 번뜩이는 시절이 있었으리라. 이른 봄에 돋아나는 원추리 싹처럼 화사하고 미추름한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만나 연애를 하고 싶은 사람도 많았던, 가난해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지성인의 특권으로 여겨 당당하게 내세우기도 했다.
서울에서 대학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춘천으로 가고 싶어 했다. 실제로 많은 젊은이들이 MT나 동아리 여행으로 춘천행 기차를 타곤 했다. 아주 크지도 않고 아주 작지도 않은, 하룻밤 어울려 놀다오기에 적당한 도시.
경춘선 기차 레일에는 수많은 사연들이 뿌려져 세월만큼 더께를 얹었다.
나는 춘천이 고향이라 그들이 누리던 춘천행 기차의 낭만과 설렘을 만끽하지 못했다. 그래도 큰 도시에서 밀려온 그들을 맞아 같이 어울려 노는 것 또한 특권처럼 여겨 나름의 고독하지 않은 시절을 보냈다.
젊은이들의 시와 노래와 고뇌와 우정과 추억이 쌓인 그 레일은 이제 없다. 사회는 늘 업그레이드를 쫓는 속성이 있어 완행열차와 비둘기 통일 무궁화의 역사를 뒤안길로 보내고 대신 멋없이 전동차가 드나들고 있다.
적당한 거리에 있어서 그만큼의 낭만과 욕망을 일으키던 설렘은 없다. 춘천은 이웃 마실 가듯 아주 가까워졌다.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에겐 진한 아쉬움이지만 그 낭만과 설렘을 겪지 않은 새 사람들은 훗날 지금의 전철여행이 또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추억은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아름다운 기억이 사람마다 다 다름이다. 아날로그를 그리워하고 그것에 매이는 것은 구닥다리 마인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기차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져 춘천이 이리도 가까워지게 말이다. 그렇지만 역시 사람이라 그것들이 애틋하게 그리워지는 걸 어쩌랴.
김현철의 노래 <춘천 가는 기차>는 더 정확하게는 강촌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것이다. 차창 밖의 강, 눈 내리는 철길, 푸르른 오월의 사랑. 기타를 튕기며 목청껏 부르던 노래들. 강촌역에 내리면 잊고 지냈던 날들의 감성이 우리를 맞아 준다. 비록 그때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들은 흔적이 사라져 버렸지만.
김현철 작사 작곡 노래 : 춘천 가는 기차
'서늘한 숲 > 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채동선음악당 (0) | 2016.07.31 |
---|---|
부용산 오리 길 (0) | 2016.07.30 |
지리산, 너 지리산이여! (0) | 2016.07.08 |
그대 지리산에 가 보셨나요 (0) | 2016.07.07 |
진주라 천리 길 (0) | 2016.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