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아우라지 강가에서

설리숲 2016. 7. 1. 23:34

 

 평창 쪽에서 내려온 송천과 삼척 쪽에서 내려온 골지천이 만나서 어우러졌다고 해서 그 이름을 아우라지라 했단다. 한국 사람들은 말장난 좋아하고 말 만들어내는 거 좋아한다. 그럼 어우러지라 해야지 왜 아우라지라 했는고? 두 물줄기가 만나는 강이 어디 한두 군덴가. 그럼 그 많은 곳을 다 아우라지라 해야 되나..

 

 

 

 아리랑의 발상지라 한다.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과 함께 3대 아리랑으로 꼽히는 정선아리랑의 발상지가 아우라지다. 옛날 고려가 망하고 어쩌구, 칠현이 숨어서 살다가 어쩌구, 그래서 아리랑이 생겼느니 어쩌니 하는 것들은 그냥 흥밋거리로만 알고 있을 일이지 그것도 역시 믿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그러루해서 제법 유명한 곳이 되긴 했지만 유명세만큼 그리 빼어난 곳은 아니다. 뭐 아우라지뿐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유명 관광지가 그렇다. 좋다고 말들을 해싸서, 또는 근사한 사진을 보고서는 막상 찾아가 보면 그저 그렇고 별거 아니기 일반이다.  

 그래도 손님이 오면 데리고 나가 구경시켜줄 만한 데가 또 아우라지다. 섶다리가 있고 휘휘 수양버들이 늘어서 있고 편도 500원 하는 줄배가 있다.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것들이 아우라지엔 있는 것이다.

 

 

 

 

 

 줄배를 타고 건널 때 사공 영감의 아우라지 안내가 일장 연설로 이어진다. 관광가이드는 아니지만 나도 그만큼은 할 상식이 있다가령 싸리골의 처녀와 여량의 총각이 연애를 하다가 물이 불어 못 만나게 됐다는 애틋한 이야기라든가뗏목을 타고 정선 평창의 나무를 한양으로 실어 나르던 떼꾼들이 돈을 많이 벌어 '떼돈 벌었다'는 말이 탄생됐다는 거랑, 궁궐을 짓고도 아직도 소나무가 남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여송정(餘松停)이란 정자까지.

 

 

 

  20여년 전에 이곳에 여행을 왔었다. 산 설고 물선 생경함이 좋았었다. 낯선 오지에서의 고독과 이질감. 그때 아우라지와의 첫 대면은 아주 멋진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는 내가 이곳에 와서 살 줄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때 각인된 인상은 아마 훗날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한 것 같다.

 그랬는데 이곳에 와서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내 동네가 되고 보니 처음의 설렘과 동경이 시나브로 엷어져 갔다.

 

 

 

소싯적(?)에 처음 정선, 그리고 아우라지를 만나고 이곳은 내내 내 무의식 안에 자리잡고 있었나 보다.

 

 

 

  많은 것이 변했다. 강가에 업소가 즐비하게 많아졌고 강 둔치는 시멘트와 돌로 개벽을 해 놓았다. 번듯한 공공건물도 들어서고 필요도 없는 거대한 다리가 우스꽝스럽게 걸려 있다석탄을 캔다고 기차가 다니더니 이제는 그 기차도 사라지고, 레일바이크라는 요상한 이름의 놀거리도 만들어 놓고는 다들 어서 놀러오라고 한다. 일 년 내내 이곳은 공사중이다. 강바닥을 판다거나 건물을 짓거나 시멘트를 바르거나 외래종 나무를 가져다 심기도 한다. 지자체들의 축제는 왜 그리 많은지 여기도 뗏목축제라는 이름으로 잠깐 요란을 떨기도 한다.

 어쨌거나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니 다 그런 거지 뭐.

 일용할 양식을 사려면 여량을 나가야 하고 그러면 반드시 만나게 돼 있는 아우라지다.

 

 

 

 

 

 

 십 몇 년의 정선 생활을 끝냈다. 데이빗 소로우는 4년여의 숲속생활로 명저를 집필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허송세월은 아닐 것이다. 훗날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숲속을 떠날 때는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아 저 나뭇잎들. 새소리, 그리고 바람. 이들과 함께 한 나날들은 참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웠다.

만남이 그러하듯 이별도 아쉬워하지 말자. 어느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그저 보이는 그대로 바라보자. 사랑이 고독하고 애달픈 건 그를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저 산을 좋아한다고 저 산도 나를 좋아하길 바라지 않듯이.

나는 또 어느 하늘 아래 짐을 풀 것이다. 그리고 이 골짜기와 하늘을 무시로 생각할 것이다. 오래도록.

 

 

 

수많은 날들을 산책하던 이 숲길에도 가을이 깊어 가고 있었다. 단지 아쉬운 건 눈 쌓인 길을 한번 더 걷지 못한 것.  그렇지만 겨울을 넘겼다면 그제는 또 노란 생강나무 꽃을 한번 더 보지 못한 걸 아쉬워했을 테니...

 

 

 

정공채 시, 변훈 작곡의 노래 이 <아우라지>는 크게 알려지지 않아 음원을 구할 수가 없다. 유튜브에서 가져오긴 했는데 음질이 젬병이라 아쉽다.

 

  아우라지 강가에 수줍은 처녀

  그리움에 설레어 오늘도 서 있네

  뗏목 타고 떠난 님 언제 오시나

  물길 따라 긴 세월 흘러흘러 갔는데

  아우라지 처녀가 애태우다가

  아름다운 올동백 꽃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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