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어렸을 적 내 누나들과 또래 여자아이들, 또 그보다 어린 계집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 이런 노래를 불렀다. 어린아이들의 노래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는다니!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이 도처에 만연해 있던 시절이었다. 전쟁은 인간이 만드는 가장 악랄한 행위이다. 이기는 자도 없고 지는 자도 없고 그 마지막은 철저한 파괴와 죽음, 그리고 인간성의 말살이다.
왜관을 지나다가 인근에 다부동이 있어 들렀다. 마침 6월 6일이기도 했다. 한국전쟁의 가장 치열하고 처절했던 낙동강전투요, 다부동은 그 중심의 지역이기도 했다. 오늘날의 이 휴전선이 그어지고 남북으로 갈라져 이만큼이나 지내온 것도 이 다부동전투에서의 승리 때문이다. 이른바 ‘낙동강 오리알’. 이 낙동강에서마저 패했다면 한반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되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만약 인공으로 통일국가가 되었더라면? 역사에 만약이란 건 없으니 그 결과 역시 추측하진 못하겠다. 반공국가에서 이런 생각하는 것 자체로도 불온사상이라 붙잡혀가기도 하니.
어쨌든 다부동전적기념관을 둘러보면서 이 나라와 전쟁, 자유 등 오만가지 상념이 머릿속에 갈마들었다.
이 전투에서 아군은 1만여 명, 적군은 1만 7천여 명이 전사했다. 그리고 꽃다운 학도병들도 1,976명이 산화했다 하니 그 처참한 상황은 감히 상상을 못하겠다. 한편으론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인 것이 행운이었다는 안도감마저 든다.
어린아이들의 놀이에서 ‘전우의 시체를 넘는’ 공황의 노래가 불리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다부원(多富院)에서
한 달 농성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 공방의 포화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 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의 시체.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
일찌기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바람에 오히려
간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던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조지훈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 전우여 잘 자라
'서늘한 숲 > 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응답하라 쌍문동 (0) | 2016.06.29 |
---|---|
목계 나루 (0) | 2016.06.25 |
우이령 바위고개 (0) | 2016.06.11 |
거룩한 분노- 논개 이야기 (0) | 2016.03.27 |
상처의 땅, 군산 (0) | 2016.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