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우이령 바위고개

설리숲 2016. 6. 11. 17:56

 

  

 당신과 오롯이 함께 했던 한나절이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책의 테마가 여유와 휴식이거니와... 그날 오전의 평화가 그랬습니다. 당신이 마련해 준 밥도 그렇구...

당신을 만난 게 참 좋은 인연임을 절감합니다.

  날은 덥지만 하늘이 높고 청명해 좋아요. 신록은 푸르고 앞에 놓인 길은 아름다운 6월의 숲이네. 잘 지내고 있으시오.

 

 우이령 고갯마루에서 친구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면서 올려다본 하늘은 짜장 짙은 코발트색이었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지리산에서 나와 처음으로 나선 여행길이었다. 기껏 산에서 나와 다시 산이라니.

헤어지기 전날 악양의 어느 집에서 함께 보낸 그녀와의 평화로운 시간의 여운이 내내 몸에 머물러 있어 보이는 사물 어느 것이라도 예쁘지 않은 게 없었다.

 

 

 

 

 우이령.

 쇠귀를 닮았다 하여 牛耳嶺이라던가. 이곳도 아픈 과거를 지닌 역사의 땅이다. 깊은 밤, 김신조 일행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넘었던 처절한 이데올로기의 현장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폐쇄되어 사람의 발길이 없었던 곳. 우여곡절 끝에 다시 개방된 게 근래의 일이다. 역시 이날도 양주 쪽 교현리 군부대에서는 병사들이 사격훈련을 하느라 요란하게 총성이 계곡을 울렸다.

 

 개방했으되 사전예약제로 인원통제를 한다. 좋은 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인적들이 넘나들며 저잣거리를 만들지 않겠는가. 인터넷 예약이라 등산복 입은 노인들 무리지어 몰려다는 풍경이 없어서 좋다. 더구나 그 무슨 효도라디온가 머시긴가 하는 뽕짝 노래 딩가딩가하는 소리 없어서 좋다.

 

  예전부터 수유리에 대한 막연한 신비감이 있었다. 수유동이라 하지 않고 수유리라 할 때는 번잡하지 않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청량리도 그렇고 왕십리도 그렇고. 하긴 서울 북쪽 맨 끝 접경지역이니 여느 지역과는 풍광이나 정서가 조금 다르기도 하다. 아울러 인근 방학동이나 쌍문동에 대한 신비감도 있었는데 내가 상상했던 그 풍경과 다르지 않아 그런대로 느낌 좋은 여행이었다. 햇빛은 강렬하고 숲은 푸르고 창공은 무척이나 명징한 아름다운 날이었다.

 

 

 

 

 

 

 

 

 

 

 

 

 

 우이령에서 내려오면 덕성여대 앞 솔밭공원에 바위고개 노래비가 있다. 작곡가 이흥렬은 생전에 바위고개가 어디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대답하기를,

 “바위고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고개이며, 삼천리금수강산 우리의 온 국토가 바위고개다.”

 아리랑고개가 어느 특정한 곳이 아니며 송학사가 어느 특정한 곳이 아니듯이 바위고개도 그렇다는 것이다.

 실은 작곡한 이흥렬보다도 노랫말을 지은 이서향에게 제대로 된 답을 들어야 속시원하련만 선생은 이미 안 계신다. 1948년 월북한 이후 전혀 그 생사를 알 수가 없다. 그간 교과서 등 모든 기록에는 이흥렬이 작사 작곡한 걸로 되어 있었는데 반공국가에서는 월북인사들의 작품들은 폐기처분하거나 사장시켰으니 그걸 구하고자 이흥렬 자신이 쓴 것으로 위장했다 한다. 글쎄다. 1934년 출판된 이흥렬의 작곡집에는 서향 작사로 되어 있다 한다.

 원작자가 밝혀진 건 최근의 일이다.

 

 이서향의 본명은 이영수로, 이흥렬과 같이 원산 출신이다. 월북하기 전엔 유능한 극작가로 활동하였다. <바위고개>는 중학교 2년인 14살 때 습작으로 썼다 한다.

 결혼해서 처자가 있던 이서향은 6·25가 나자 가족을 등지고 월북을 했다. 그의 부인은 백난영으로 유명한 백병원의 설립자인 백인제 박사의 장녀다. 그녀가 최근인 2001년 어느 글에서 비로소 토로를 했는데,

바위고개는 남편이 14세이던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돌아오다 지은 것으로 훗날 남편의 친구인 이흥렬 씨가 작곡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남편으로부터 들었다

빨갱이 마누라라는 피해의식 때문에 나서서 밝히지 못한 책임이 크다라고 술회했다.

 

 늦게라도 바로잡은 건 다행이다. 문제는 바위고개 노래비가 왜 생뚱맞게 서울 수유동에 있는가이다. 우이령과는 일말의 연관도 없는 노래 <바위고개>. 이서향이 청소년기를 보냈던 원산이나 그 인근의 어느 소박한 고갯길이여야 하지 않을까. 우이동이 프랜차이즈화 해서 소유하려나 보다.

 어쨌든 아리랑처럼 한국인의 내면에 있는 기본 정서를 자극하는 아름다운 노랫말과 멜로디다. 내가 참 좋아하는 노래다.

 

 

 

 

 

 

 

 

이서향 시 이흥렬 곡 김성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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