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촉석루 아래 강가에 작은 바위 하나가 보였다. 논개는 그 바위가 자신의 목적을 도와줄 수 있으리라 직감했다. 유인책을 쓰자는 생각이었다. 미끼를 향해 달려들도록 꾀를 짜냈다. 장맛비 탓에 찰랑찰랑 바위 윗면만 물 위에 드러나 있었다. 남강은 범람을 그치긴 했으나 아직도 시뻘건 황토물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노도처럼 흐르고 있었다. 논개는 매우 위험한 모험에 전율했다. 자신이 바위 위에 올라가 미끼 노릇을 할 때 어느 왜장이 걸려들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도리어 큰 화를 당할지 모른다.
왜장들은 벌써 거나하게 술기가 올라 있었고 왜병들도 술에 취한 몰골들이었다. 논개는 아주 천천히, 마치 산보하듯이 강가를 거닐기 시작했다. 촉석루 위 관기들은 처음엔 몹시 두려워서 경직되었으나 차츰 안정을 되찾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술을 따랐다.
시간은 흐르고 강가를 거닐며 논개는 저만치 안쪽에 윗부분만 드러나 있는 바위를 바라보았다. 危巖 (위암) 이란 바위였다. 물가에서 위암까지는 어른 팔로 한 발은 됨직한 거리였다.
드디어 촉석루 위 남쪽 난간에 기대어 앉아서 술을 마시던 왜장 하나가 아래쪽 강기슭에 흰옷을 입고 거닐고 있는 논개를 발견 하고는 여자를 차지하기 위한 내기를 제안했다. 왜장들은 일제히 강가에 서 있는 흰 모시옷을 입은 여인에게로 눈길을 던졌다. 다른 관기들도 그쪽으로 눈길을 주었지만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 수는 없었다. 논개는 자신의 계획이 큰 차질이 없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남은 것은 왜장을 유인하는 일이었다. 논개는 물속의 위암에 다시 눈길을 주었다. 좋은 장소라는 확신이 들었다. 위암 사방은 물길이 무섭게 휘감고 돌아 다시없는 죽음의 자리였다.
논개는 신을 벗어 들고 힘껏 뛰어 위암 위로 올라섰다. 촉석루 쪽을 향해 미소를 주었다가 다시 옆모습을 보이면서 우수에 찬 얼굴로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최경회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나간 19년의 세월 모두가 최경회의 사랑 위에서 피어난 꽃이라 여겨졌다.
이윽고 왜장 하나가 내려와 논개를 향해 무어라고 수작을 붙였다. 논개는 사내를 홉떠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왜장은 당당한 체구였다. 계속 뭐라고 지껄였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왜장이 재미있다는 듯이 손짓을 해대는 것으로 보아 논개더러 뭍으로 나오라는 시늉 같았다. 그러자 논개가 조금 더 환하게 웃어 보이면서 도리어 왜장 더러 위암 쪽으로 건너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촉석루 위에서는 왜장들이 함성을 지르며 웃어댔다. 왜장은 몇 번이나 망설였다. 논개가 계속 손짓을 했다. 강아지를 부르는 시늉의 손짓이었다. 마침내 왜장이 성큼 뚜어 위암으로 올라섰다. 한쪽 발이 바위에 닿자마자 논개를 덥석 껴안았다. 논개는 왜장에게 안긴 채 왜장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술 냄새가 확 풍겼다.
왜장은 싱글벙글 웃었다. 논개의 두 팔이 왜장의 허리를 살며시 휘감았다. 왜장은 몹시 만족한 듯 논개에게 몸을 더욱 밀착시켰다. 논개는 왜장의 허리 뒤로 돌려진 손끝으로 양손에 끼워진 옥가락지를 확인한 다음 깍지를 꽉 끼었다. 앞으로 슬쩍 왜장을 잡아 당겨보았다. 왜장의 몸이 기우뚱했다. 왜장은 몹시 기분이 좋은 모양으로 논개가 잡아끄는 대로 몸을 내맡겼다. 그러는 중에도 촉석루 위에서는 내내 왁자지껄 함성을 질러댔다.
논개는 숨을 몰아쉬면서 위암 끝에 섰다. 한번 더 최경회를 떠올렸다. 살아서 함께 못다 한 사랑이 심장을 찔렀다. 또한 폭우 아래 무너지는 흙담처럼 죽어 가던 조선백성들의 처절한 절규가 들려왔다. 순간 두 팔에 혼신의 힘을 몰아 왜장을 껴안고 강물로 힘껏 떠밀었다. 왜장의 비명과 촉석루 위 왜장들의 비명이 들린 것은 같은 순간이었다.
남강 물은 여전히 도도하게 흘렀다.
논개가 살해한 왜장은 게야무라 로쿠스케였다. 게야무라 로쿠스케의 죽음은 뜻밖으로 임진란의 한 전기가 되었다. 왜군들은 그동안 진주성전투에서 입은 막대한 병력 손실과 그로 인한 전력의 약화로 사실상 호남공략이라는 최대 목적이 좌절되고 말았다.
논개의 일생 중, 그 최후의 순간을 묘사한 글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르다. 우리는 천대 받는 일개 기생이 애국과 구국의 일념으로 왜장을 껴안고 장렬하게 산화한 영웅으로 배웠고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다.
장수 현감 김경회는 곤궁에 빠진 논개 모녀를 구해주고, 오래도록 관가에 살게 하여 뒷배를 보아주었을 뿐 아니라, 논개를 기적(妓籍)에 올린 후 머리까지 올려준 은인이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김경회는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의 치열한 전투에서 전사한다.
최종적으로 정리된 논개 이야기를 보면 논개는 김경회에 대한 보은과 더불어 지아비이기도 한 그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으로 왜장을 껴안고 강물로 뛰어든다.
거창한 구국의 충정이 아니라 남편의 죽음에 대한 원수 갚음으로 격하되어 있는 것이다. 혼란스럽다. 우리 영웅의 거룩한 산화가 겨우 남편에 대한 복수로 전락하다니.
한때 진주와 장수가 논개를 두고 자기주의적인 다툼을 벌였었다. 진주는 논개가 진주성과 촉석루에서 나라를 구하려고 장렬한 최후를 맞았으니 우리의 인물이라 주장하고, 장수는 우리 고장에서 나서 살았으니 우리 인물이라고 주장하며 서로 손을 놓으라고 행정다툼을 벌였다. 게다가 논개의 묘소가 있는 함양까지 뛰어들어 혼탁햇던 적이 있었다. 어찌 정리가 됐는지 모르지만 현재는 서로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나름대로 논개를 선양하고 있다.
10여 년 전에, 함양 소로마을에서 여름 한 철을 지낸 적이 있었다. 지척에 논개 묘서가 있어 두어 번 가 보았는데 그때는 관리가 잘 안돼 잡초가 무성하고 여느 주인 없는 산소와 다름없었다.
이번에 다시 가 보니 지나치다 싶게 웅장하게 꾸며 놓았다. 그리고 사당도 그럴듯하게 지어 놓고.
논개의 탄생지인 장수읍에도 또 다른 사당이 있는데 어느 왕릉 못지않은 규모로 크게 성역화 해 놓았다.
본 출생지인 장계면 주촌마을에 역시 큰 규모로 생가터를 조성해 놓았다.
모르겠다. 거룩한 구국의 선열자로 추앙해야 할지 뜨거운 정열의 열녀로 칭송해야 할지. 약간은 혼란스럽다.
어쨌거나 제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간특한 짓들을 벌이고 있는 현 총선출마자들과 그 집단들의 추잡한 꼴들을 보자면 진정 그는 위대한 조상이고 길이길이 추앙받아야 할 위인인 것이다.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石榴)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변영로 <논개> 일부 -
곽선례 : 논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