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국풍'81 그리고 이용

설리숲 2016. 4. 6. 00:18

 

 나라의 혼란을 틈타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신군부 세력은 천인공노할 광주만행을 자행하고 국민을 우민화하는 정략에 힘을 쏟았다. 독재자가 흔하게 쓴다는 3S정책(Sex, Screen, Sports)이 바로 실시되었다. 애마부인 시리즈를 필두로 영화산업과 극장은 온통 에로영화들이 봇물처럼 넘쳐났다. 하다못해 <>이니 <감자> 등 주옥같은 고품격문학작품들마저도 AV성 영화가 되어 그 본질이 추락하고 말았다. 지금 나도향의 뽕이라 하면 배시시 웃음을 동반하는 저급한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또한 프로야구를 출범시키며 쿠데타정권에 대한 일말의 시선조차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國風’81>이라는 애매모호한 프로그램도 그 일환으로 탄생시켰다. 5·18항쟁이 있은 지 꼭 1년이 지난 1981528일부터 닷새간 여의도에서 벌인 이 행사는 행여 저들을 문죄하거나 항거하려는 기운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기획된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진행과 주관은 역시 그 주구인 KBS가 맡았다. 상업광고가 없는 KBS는 그 시간에 줄창 <대통령찬가>를 틀어댔고 또한 국풍’81을 요란하게 홍보해댔다. 9시 땡전뉴스에도 많은 시간을 국풍’81에 대한 보도로 도배를 하곤 했다.

 

 국풍’81의 성공여부는 모르겠으나 그건 의미가 없다. 다만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는 신군부의 전략은 성공한 셈이다. 자평하기론 연인원 600만 명이 여의도를 다녀갈 정도로 성황은 이루었으나 주체가 되어야 할 대학생들의 참여가 저조해 야심찬 포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로 귀결되었다.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그 시절 예외적으로 닷새 동안은 통금을 풀어 여의도 광장에서 밤낮으로 국풍 행사를 벌였으니 거기에 쏟아 부은 예산도 엄청났다.

 그래서 연중행사로 기획한 국풍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일회성 행사로 마감되었다.

 

 

 

 

 

 

 

 이용.

 국풍‘81의 정체성과 성과는 부정적인 오점으로 남았지만 그 안에서 유일하게 샛별이 탄생했으니 그가 바로 이용이다. 국풍’81 행사의 하나로 젊은이의 가요제가 있었다. 신군부가 언론장악을 하면서 당시 TBCKBS에 강제 통합했다. 사실은 TBC에서 매년 주최하고 있던 젊은이의 가요제를 KBS로 이전 위임하면서 그 규모를 확대한 게 국풍‘81이었다. 그러므로 가장 핵심적인 행사가 이 가요제였던 셈이다.

 이용은 이 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훗날 가장 화려한 스타가 되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물론 대상수상곡도 있었지만 그 노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아는 사람도 없고, 유일하게 이용의 금상곡이 각광을 받았다. 곧이어 제작된 음반에도 이용의 노래가 타이틀곡이 되었고 대상곡은 뒤로 밀렸다.

 

 이곳에서 탄생한 이용은 순식간에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당시는 조용필이 아성을 구축하고 있던 때여서 여러 해 가요대상을 수상하고 있었는데 그 아성을 무너뜨리고 이용이 2년 연속 가요대상을 거머쥐는 돌풍을 일으켰다. 하긴 KBS 자신들이 발굴해낸 스타이니 알아서 대상도 안겨주었을 거라는 뒷말을 달 수도 있지만 이용은 워낙 스타성이 있었기에 그것에 흠을 잡지는 못하겠다.

 사생활의 관리미숙으로 흠집을 남기며 흐리마리 추락하기는 했지만 이용은 80년대 조용필을 위협할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한 시대의 풍운아로 기억될 만하지 않은가. 그의 뽀글이파마가 젊은 남자들에게 들불처럼 번져 오랫동안 거리에서 대유행하기도 했다.

 

 

 이 노래 <바람이려오>가 나왔을 때 나는 고2였다. 노랫말이 참 좋다고 착각했었다. 왜냐하면 무슨 내용인지 애매모호하고 어려워 보이니까 왠지 고상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 후로 아무리 읽고 또 읽어 봐도 이 노랫말은 무슨 내용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천녀유혼 유의 판타지 영화 같기도 하고, 얼핏 죽은 연인의 시신을 곁에서 지킨다는 내용 같기도 한데 밝아오는 아침이 나의 노래를 삼켜 버린다는 건 무슨 소린가, 당최 알 수가 없다.

고로 노래는 좋지만 좋은 노래는 아니다라는 요상한 결론으로.

 

 

 

 국풍'81은 이용이라는 걸출한 스타와 또다른 히트작을 만들어냈으니 그것은 바로 충무김밥이다.

 통영이라는 작은 바닷가에서 여의도로 상경한 이 음식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진 것이 이때였으니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원래 이름대로 하면 '통영김밥'이라 해야 하지만 박정희가 통영을 충무로 개명하여 통치하는 동안 통영이란 이름은 사라져 있던 시기였다. 

 

 

 

 

 

 

 

                    이용 : 바람이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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