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은 삼나무 영동은 감나무 고창 외곽은 소나무 등 요즘엔 가로수 수종도 다양해서 도시마다 저마다의 특성에 맞게 심어 놓지만 내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거개가 플라타너스였다. 뭐든지 옛 추억이 깃든 것이 아름다워서인지 나는 아직도 플라타너스가 가로수로서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넓은 이파리여서 폭염에 달구어지려는 도시 가로를 가려 주는 그 청량감은 플라타너스가 제격이 아닐까.
지금은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 외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아름다운 가로수는 남들도 다 좋아하는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조치원(현재는 세종시)에서 청주로 가는 길의 플라타너스, 예천 선몽대 은행나무, 월정사 전나무, 내장사 단풍나무 등이 생각난다. 그리고 봄이면 전국 어디서나 비경을 자랑하는 벚나무길이 있다.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은 봄노래일까 가을노래일까. 가사에 봄도 있고 가을도 있건만 나에게는 으레 봄노래로 인식되고 굳어져 있어 연초록 신록이 찬란한 5월이면 간절히 이 노래가 그리워지곤 한다. 때로는 가로수길에서 오카리나로 연주하기도 하여 동행인들에게 박수갈채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가을노래로 인식하고 있는 걸 알고는 지인들마다 물어보곤 했다. 봄노래입니까 가을노래입니까. 가을노래라고 답하는 사람의 비율이 더 높았다. 그렇구나. 한번은 노래에 조예가 있는 어느 여성에게 결론 삼아 물어보았더니 봄노래도 좋고 가을노래도 좋은데 이문세의 음색이 가을에 더 가깝다는 현답을 주었다. 그렇구나.
그렇지만 이미 몸에 배어 있는 인식 때문에 나는 여전히 봄노래로 분류하고 있는 터이다.
신사동 가로수길.
지금은 겨울.
봄도 여름도 가을도 아닌 겨울은 또 겨울만의 멋과 낭만이 있어 좋다.
그러고 보니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은 쨍한 겨울날에 더 어울리는 것도 같다.
유명한 이 신사동 가로수는 은행나무다. 가로수 자체는 여느 곳보다 특별하지도 더 아름답지도 않다. 커피점과 카페를 주 테마로 하여 성시를 이루고 있는데다 가로수라는 옷을 덧 입혀 유명한 “신사동 가로수길”이 되었다.
안날에 많은 눈이 내렸지만 이미 거리엔 눈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없고 맑고 포근한 겨울 아침이었다.
하릴없이 여기저기 기웃대고 노닐다가 지난 봄 우리 다원에 카메라 들고 취재 왔었던 사람을 떠올렸다. 가로수길에서 찻집을 한다는 부유한 집의 따님이었는데 서울 오면 들르라며 명함을 주고 갔었다. 허술하게 간수했더니 어디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허명대고 찻집 간판을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이름도 기억해 두지 않은 집을 찾을 수 있나.
또 하릴 없이 거닐면서 이따금 잎이 다 진 은행나무를 쳐다본다. 저 앙상한 가지에 파란 순이 돋으려면 아마 반년은 있어야 하리라. 모든 나무 중에서 은행나무가 가장 늦게 새순이 돋는 걸 안다. 그 나달동안 우리도 깊은 침묵 속에 침잠할 것이고 사람에 따라서는 그에 걸맞은 깊은 사색과 내면의 성숙으로 더욱더 아름다운 인간으로 거듭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 인간이 되고 싶다.
- 신사동 가로수 길에서 -
이영훈 작사 작곡 이문세 노래 : 가로수 그늘 앞에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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