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섬진강

설리숲 2016. 3. 4. 13:17

 

 

 

 

 

 길고 긴 겨울이 끝날 무렵이면 늘 가방 메고 떠나게 유혹하는 것. 섬진강의 매화가 보고 싶어. 산수유도 보고 싶어. 은빛 강물에 팔을 박고 재첩을 잡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 아니 다 그만두고 어서 이 지긋지긋한 겨울에서 벗어나 파랗게 물오른 그곳으로 가고 싶어.

 

  그해 봄 꽃잎이 비처럼 떨어지는 벚나무 길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라져 간 사람과 처음으로 걸었었다. 사랑은 내게서 멀리 있다. 섬진강이 내게서 멀리 있어 언제나 아련하게 갈망하는 존재인 것처럼.

 

 

 

 

 

모델은 정인 씨가...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이 속상하고 울컥 눈물이 나온다며 섬진강엘 가고 있노라고.그냥 사는 게 다 그렇지 않을까. 누구는 일상이 행복하고 핑크빛 일색일까. 그렇지만 내가 해준 말은 게서 그냥 펑펑 울라 한 게 고작이었다.

  밖에는 가을비가 흩뿌리고 몹시 을씨년스러웠다. 낙엽 지는 깊은 가을이었다. 하동과 섬진강이 너무 맘에 들어 몇 년 후에는 그곳에서 살고 싶다고 친구가 그런다. 우울과 외로움이 전해져 온다. 아마 계절 탓이리라. 이런 계절에 정신이 온전할 수가 없다. 나도 가을을 탄다. 그것도 무지 심하게.

 

 

 

 

 

 

 하동과 섬진강.

 어느 때 섬진강을 따라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문득 떠오른 게 윤후명이었다. 늘 그렇듯이 소설 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 나지만 뇌리에 박힌 구절이 하나 있었다.

 

    - 외롭게 살고 싶다

 

 

  섬진강가에서 불현듯 떠오른 그 구절. 아 이런 곳에서 평생 고독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그곳이 풍광이 절경이거나 무슨 감흥을 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 안에 생래 내재하고 있던 것이 아마 그때 분출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언제든 밖으로 나오려고 잔뜩 벼르고 있다가 기회만 되면 슬그머니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고독을 진 운명.

 또 그 전 어느 해 연분에 하동을 간 적이 있었다. 광양에서 하동으로 가려면 섬진강의 그 다리를 건너간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바라본 하동읍의 풍경은 그야말로 동화 속이었다. 봄이었다. 건너편 마을의 그곳은 온통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복숭아꽃 살구꽃. 그때 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내 언젠가 저곳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고독하게 살기 위해 처음 한 일이 하동으로 가는 거였다. 그러나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이상과 현실은 괴리가 있다. 동화 속 아름다운 마을이던 그곳도 역시 사람이 산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모자란 사람 교활한 사람. 핸드폰가게가 있고 피시방이 있고 호객하는 택시기사가 있고 조금이라도 전세금을 더 받으려는 집주인이 있고 장날이면 집 뒤란에서 자른 죽순을 가지고 나와 장터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할머니가 있었다. 세상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더라.

 

 

 

 

 

 

 외롭고 싶다고 외로워지는 건 아니다. 연애해야지 맘먹었다고 금방 애인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맞춰 사는 것이다.

 어쨌든 난 평생을 고독하기 위해서 하동과 섬진강을 택했다. 그게 다였다. 그리고 나는 고독했다섬진강이 아니어도 나는 지금 충분히 외롭고 앞날도 그럴 것이다.

 

 친구가 보낸 문자에 그래서 이 사람도 나처럼 외롭고 싶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니면 지금 현재 너무나 외롭고 힘들지도 모른다. 벗어나려고 몸부림칠 일이 아니다. 망망대해 조각배처럼 그냥 파고에 얹혀 있으면 그만이다. 설사 물결 속에 휩쓸려 들어가 버린대도 그것 또한 삶의 일부이다. 조각배 위에서 살아나려고 버둥거린들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 아니겠는가.

 

 

 

 

 

 한번 간 사랑은 그것으로 완성된 것이다. 애틋함이나 그리움은 저 세상에 가는 날까지 가슴에 묻어두어야 한다.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거들랑 그 풍경 속에 설정되어 있는 그 사람의 그림자와 홀로 만나라. 진실로 그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그 풍경 속의 가장 쓸쓸한 곳에 가 있을 필요가 있다.

 진실한 사랑을 위해서는 인간은 고독해질 필요가 있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나는 그 포구의 가장 쓸쓸한 내 장소로 간다.

                                                                              - 윤후명 -

 

 

 

 

  강을 살린다고 중장비들을 죄다 끌어 모아 파내고 깎고 붙이고, 그 빌어먹을 4대강사업에서 섬진강은 화를 면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이런 걸 다행이라고 가슴 쓸어 내야 하는 현실이 기가 막힌 일이다. 광양 쪽이든 하동 쪽이든 강가를 걸어가 보라. 그 조촐한 아름다움을 느껴 보라. 어찌 강이 죽었다고 할 수 있나. 그것은 거기 존재하는 것 자체로 인간에게 복과 혜택을 주는 것이다.

 

 

 

 

 

정공채 시 강창식 작곡 양은희 노래 :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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