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월악산을 가겠다고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가 그날 새벽 내린 눈 때문에 버스는 월악산은 못 간다고 우리를 수안보에 내려 주고 도망갔다. ‘우리’란 나와 오노 요꼬를 닮은 어떤 여자 두 사람이다.
다시 한 해가 가고 겨울이 왔다. 이번엔 내가 직접 드라이브를 했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날은 청명했다. 동서울 발 버스도 이런 날은 군소리 없이 운행했을 테지만 도보여행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행도 아니고 그저 월악산 깊은 골을 들어가 보고 싶었을 뿐이다. 대중교통과 자가운전은 저마다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라 자가운전의 장점을 부각하여 누리는 여행도 나름 괜찮다.
쾌청한 날씨였지만 이틀 전에 내린 폭설로 겨울산의 정취를 그런 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저만치 앞서 가던 부부인 듯 한 쌍의 대화내용은 눈이 별로 없어서 파이라고 한다. 그 사람들은 눈속에 푹푹 빠지는 산행을 즐기러 왔을 테지. 사람들의 취향과 만족은 다 기준이 다른 법이어서 같은 양의 눈을 대하고서도 나는 적절하게 좋다는 편이고 어떤 이들은 적어서 실망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눈이 쌓여서 산행하기가 불편하다 하겠지.
목적이 산행이 아니고 더구나 정상에 오를 요량은 애시 없었기에 영봉이 이마 위에 까지 다가온 지점에서 돌아 내려왔다. 고도로 오를수록 눈의 양이 많아져서 운동화 차림으론 아무래도 적절하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장회나루에서 수안보로 넘어가는 지릅재를 가 보고 싶었다. 깊은 산세와 계곡은 월악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과연 명산임을 알겠다.
지금은 겨울이고 평일인지라 인적이 드물어 고즈넉한 저 길.
언제 저 길을 걸어서 넘어가고 싶다. 마음 맞는 길동무들을 규합해 유유자적 저 길을 누리고 싶다.
신라 경순왕은 결국 나라를 왕건에게 바치고 일신의 안위를 구걸하였다. 태자 마의는 그에 울분을 토하며 모든 것 다 등지고 금강산으로 들어가 생을 마치기로 했다. 내 생각인데 태자는 나라를 잃은 것에 의분했던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있으면 자신이 왕이 되어 나라를 차지했을 텐데 자신의 나라를 아버지가 고스란히 남을 준 게 몹시도 분하고 허탈했을 것이다. 어쨌든 역사는 의분의 결기로 금강산엘 들어간 비운의 왕자를 애국자로 서술하고 있으니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금강산으로 가면서 마의태자는 여동생 덕주를 데리고 간다. 하늘재에서 하룻밤을 묵는 밤,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곳에 부처를 세우면 억조창생한다는 계시의 꿈을 꾸고는 덕주공주는 월악산 기슭에 마애여래석불을, 마의 태자는 하늘재 부근에 미륵석불을 세웠다.
공주는 월악에 남기로 하고 월악사에서 여생을 보냈고 태자는 개골산에 들어가 여생을 보냈다. 덕주공주가 머물렀다 해서 절 이름도 월악사에서 덕주사로 바뀌었다. 덕주사는 송계리 등산로 들머리에 있다.
월악산은 이렇듯 비운의 마지막 황태자의 슬픔이 깃든 곳이다. 물론 전해지는 이야기고 정사는 아니다.
주현미의 노래는 그들의 불행한 전설을 바탕으로 만든 노래다.
월악산 노래비는 신륵사 입구에 있다. 제막식 기념공연에 주현미가 출연하였다.
나는 <월악산> 보다는 흐르고 있는 <태평무>가 훨씬 좋다. 역시 월악산을 소재로 한 노래인데 1985년 KBS드라마 주제가로 쓰이며 오프닝 타이틀곡으로 매일 듣던 노래여서 귀에 익은데다가 가사 내용 역시 깊은 맛이 있어 좋다.
이철향 작사 박성규 작곡 주현미 노래 : 태평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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