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판소리

설리숲 2015. 9. 25. 23:36

 

  추석을 앞둔 마당이어선지 판소리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북한에는 왜 판소리가 없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대충 요약하자면 북한에서는 해방이후 민족음악을 현대화작업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김일성의 취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됐다고 한다. 김일성의 음악적 가치관은 노래는 무조건 미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판소리의 근본 정체가 조선시대 부르주아들이 딩가딩가 여자들을 끼고 놀면서 부르던 노래라는 것이다.

 북한의 가수들은 확실히 고운 소리를 낸다. 연전에 남한 대중가수들이 대거 평양을 방문해 공연할 적에 패티김, 최진희 등을 들어 좀 비아냥거린 적이 있다. 남조선은 저렇게 목소리 내는 게 유행인가 보다고.

 탁성을 경원시하고 미성을 예찬하는 경우를 볼 때 위 기사 내용은 그럴 듯하지만 선뜻 공감이 되진 않는다.

주체사상을 최고 덕목으로 삼는 김일성이 우리 음악인 판소리를 경원하는 건 모순이 아니냐 하는 비판의 뉘앙스를 풍기는 글이다.

 

 판소리는 전라도를 기반으로 해서 전승되어 온 음악이다. 이남에서도 전라도 외에는 판소리 하는 지역이 없다. 하물며 분단된 이북지역에서 판소리가 계승될 리가 없다. 아마 김일성이 적극적으로 장려했더라도 토양이 없는 곳에서의 판소리는 가당키나 했을까.

 

 판소리는 음악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교가 다 들어 있다고 한다. 그 기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나는 잘 모른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도 솔직히 일부러 판소리를 찾아 듣게 되진 않는다. 한 마당을 다 들으려면 예닐곱 시간은 기본이니 듣는 사람도 소리하는 사람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서양 오페라의 아리아처럼 부분적으로 들을 수는 있다. 춘향가의 <사랑가>. 수궁가의 <토끼 배 가르는 대목> 등등.

 

 판소리는 정녕 현장에서 들어야 한다. 소리꾼의 육성이, 그것도 탁성이 가장 진짜배기다. 소리와 아니리 발림이 어우러져야 한다. 아니리는 반드시 전라도 사투리여야 한다.

 가장 수준이 높다는 이 음악을 우리 보통사람들은 즐겨듣지 않는다.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취향을 강요할 수는 없다. 입때껏 해왔던 것처럼 소수 전문가들과 그 제자들에 의해 길래 이어지고 있는 것이 고마운 일이다.

나는 전에 구례 운조루에서 박정선 명창의 소리를 듣고 많이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 했던 그날 비로소 판소리와 우리 음악의 심오한 세계를 알게 되었다.

 

 

 

                             

                                    심청가 중에서 秋月滿庭(추월만정) : 명창 안향련

 

        수궁에서 호의호식하던 심청이가 달빛 가득한 밤에 아버지를그리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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