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이 주일의 노래>라는 라디오 프로가 있었다. 주 5일 동안 같은 노래를 소개하며 내보내는 10분짜리 프로였다. 꼭 이 프로를 듣고 등교했다.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7시에 집에서 출발하려고 준비하는 동안 자연스레 듣게 되었다.
그때 알게 된 노래가 이 노래다.
수연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가수의 노래였는데 처음 그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여가수는 제법 지명도를 높이며 <가요톱텐>에도 자주 출연하였다.
한 주에 다섯 번 듣게 되는 이 노래를 나는 금요일에 완전무결하게 익혔다.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가장 머리가 좋다는 시절이라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은 노래 하나를 스무 번 이상 들어도 익히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노래가사를 손에 들고 보면서 불러대도 역시나 가사를 다 외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진남성 작사 작곡 수연 노래 : 언덕에 앉아
어쨌든 처음 알게 된 이 노래가 참 좋았다. 아침에 듣는 노래라 그 감성이 더 충만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 주의 노래는 나나 무스꾸리의 <Try To Remember>였다. 선곡을 미루어보건대 아마 가을이었던가 보다. 나나 무스꾸리의 청아한 목소리에 굉장히 매료되었었다. 역시 처음 듣는 가수요 노래였다. 나나 무스꾸리를 알게 되고 엘비스 프레슬리를 알게 되면서 나는 팝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지금 여전히 나는 팝을 좋아한다. 팝이든 다른 장르의 음악이든 음악을 좋아하게 된 건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요 축복이라 생각한다.
수수밭 사이로 솔솔바람 불면 언덕에 둘이 앉아
맑게 개인 하늘 수많은 별빛을 우리 함께 세면서
사랑한다던 당신의 그 말
내가 처음 느낀 사랑이었네
그러나 이제는 그대 멀리 가고 나 혼자만 앉았네
행복했던 순간 다시 생각하면 눈물만이 맺히네
헤어지지만 잊지는 마오
그대 내게 남긴 마지막 음성
예쁜 꽃반지 만들어 내게 주던 그대 모습
나는 아찍 그때 일을 기억합니다
이제 나만 홀로 앉아 흩어지는 꽃잎 보며
아름답던 지난 날을 생각합니다
풍요의 계절이요, 결실의 계절이라고.
초목들은 오곡백과 씨와 열매를 맺음으로써 풍성하고 아늑할 수도 있겠다. 나는 서글프고 두렵고 조바심이 난다. 화려한 꽃잎들이 지고 이렇듯 씨를 맺고, 그리고는 이것마저 다 떨어지고 말 것이다. 맹렬한 겨울이 가까워졌다. 색 바랜 나뭇잎들은 아름답기보다는 더욱 뼈저리게 시간을 체감하게 한다.
여름이 끝나고 코스모스가 있고 들판의 벼이삭이 수그러들 무렵의 계절이 나는 가장 좋다. 벼가 여물어 추수를 하고 코스모스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까닭 없는 '빈둥지증상'이 생기곤 한다.
바야흐로 수수가 지천으로 익어가고 있다.
이렇게 가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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