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교향곡 6번. 베토벤 자신이 ‘전원’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각 악장에도 제각각 표제를 붙였다. 베토벤은 그만큼 이 교향곡에 애착심이 있었던 것 같다.
교향곡 5번 <운명>은 인간의 음악이고 6번은 자연의 음악이다. 자연과 전원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들어가야 할 곳이다. 베토벤은 그곳의 낭만과 서정을 혼신으로 묘사한다. 고전주의 음악을 마감하고 낭만주의시대를 연 베토벤이요, 이곡은 그 대표곡이라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은 귀를 앓게 되고 청력이 극도로 나빠져 가는 시기에 작곡하였다. 심신이 절망으로 걷잡을 수 없이 빠져 들어갈 때 베토벤은 숲과 전원을 즐겨 찾았다. 그곳에서 자연을 접하면서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자연의 음악’을 만들어낸 것이다. 자연에 대한 거장의 동경과 경외심의 발로이다.
전능한 신이여, 숲속에서의 나는 행복합니다. 여기에서 나무들은 모두 당신의 말을 합니다. 아 신이여, 이곳은 얼마나 장엄한가요. 숲속 언덕 위의 이 정적이여. 당신을 받들기 위한 이 정적이여. - 베토벤-
앙드레 지드의 소설 <전원교향악>은 베토벤의 음악을 모티프로 해서 써진 것이다. 음악회에서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나오면서 맹인소녀 제르트뤼드는 인도하여 동행한 목사에게 간절하게 묻는다.
“정말로 땅은 새들이 노래하는 것처럼 아름다운가요? 사람들은 왜 그 이야기를 더 해주지 않는 걸까요?”
그리고 목사는 이렇게 대답해 준다.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새들의 노래를 잘 듣지 못한단다.”
제르트뤼드는 목사의 인도를 받으며 전원에 나가 보통 사람들은 듣지 못하는 전원의 교향악, 대지의 교향곡을 즐겨 듣는다. 환희와 은총에 젖어 든다. 그녀의 영혼에 은혜의 빛이 깃든다.
앙드레 지드에게도 베토벤의 음악은 무한한 감상을 주었나 보다.
소설 속에서 제르트뤼드가 감동하며 언급한 것은 <전원 교향악> 2악장이다. 베토벤은 이 2악장에 ‘시냇가의 정경’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귀가 안 들리는 사람에게도 눈이 안 보이는 사람에게도 전원은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영혼의 안식과 은총을 주는 위대한 신이 아닌가.
베토벤 교향곡 6번 2악장 <시냇가의 정경> Op.68
바야흐로 들판이 누렇게 황금이 되어 가고 있다. 귀도 들리고 눈도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이런 풍광은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과연 뭇 생명들의 고향은 자연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의 고향이 있어 곧 농촌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농촌은 시나브로 피폐해져 가고 무너져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농촌은 거의 무너져 버렸다. 그나마 이웃 간의 유대와 끈끈한 정으로 근근이 유지되고 있었는데 이젠 그 끝이 보이는 것도 같다.
지난여름 어느 마을의 농약사이다사건을 접하면서 정말로 농촌이 와해되어 가는 걸 절감하고 있다.
우리는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리는가.
추석이 다가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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