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꼬마 목동

설리숲 2015. 10. 16. 23:35

 

 참 순한 동물, 양 염소.

 염소도 순하긴 하지만 가끔 성깔이 있어 날뛰기도 하고 사람이 가까이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언제나 슬금슬금 물러나 거리를 유지하곤 한다. 워낙 빨라 사람이 잡는 것도 쉽지가 않다. 양은 순함의 대명사다. 나는 양을 대해 본 적이 없다. 대관령목장 등에서 멀찌감치 보거나 영상으로 본 것밖엔 없다.

 우리가 함께 하는 짐승 중에서 가장 순한 건 소가 아닐까. 산만한 덩치에 힘도 엄청나지만 여섯 살짜리 꼬마가 감당하여 부리기에 벅차지 않다.

 

 농가에서 소는 필수 가축이었다. 농사를 지으려면 힘센 소가 있어야 한다. 덩치가 크니 먹는 양도 많지만 소는 철저한 채식이기에 가난한 촌가에서 먹이기에 그리 어려움이 없다. 산내들에 지천인 게 풀이다. 닭은 곡식 모이를 주어야 하고 개도 끼니마다 밥을 주어야 하니 덩치는 작아도 만만치가 않다.

 풀이 없는 겨울철에는 소먹이는 것도 제법 일이다. 작두로 여물을 썰고 매일 저녁 가마솥에 쇠죽을 끓였다. 작두질은 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본 기억은 없다. 잇짚이나 수숫단 옥수숫대를 썰었다. 아버지가 넣어 주고 어머니가 발로 썰었다. 여차하면 손이 잘릴만한 위험한 작업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작두 썰 때마다 아슬아슬 오금이 저리던 기억이다.

 

 겨울에 소는 전혀 하는 일이 없다. 먹고 자고 피둥피둥 살이 찐다. 아주 추운 엄동설한에는 아버지가 덕석을 입혀 놓기도 한다. 암소일 경우에는 전 해 미리 임신을 시켜 놓아서 봄이 오기 전에 출산을 하도록 조절했다. 봄이 시작되면 한 해 일을 시작해야 해야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주 추울 때 출산을 하기도 해서 소에게는 미안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쨌든 사람과 소는 한 가족이거나 조치개 같은 관계여서 어차피 송아지를 출산하면 주인도 마찬가지다. 춥지 않게 보온도 해주고 행여 굶겨 죽이지는 않을까 밤낮으로 들어가 살펴보고 관리를 해준다.

 

 한번은 이웃집 소가 들일을 하는 중에 송아지를 낳는 걸 본 적이 있다. 만삭인 소를 일을 시키는 주인은 참으로 몹쓸 사람이다. 양수가 터져 쏟아지고 뒷다리가 먼저 나오고 앞다리가 보이는가 싶더니 땅에 툭 떨어졌다. 잠시 정신을 고르고는 곧바로 일어서 걷는다. 참으로 신기한 장면이다. 어떻게 나오자마자 걷고 뛸 수가 있을까. 내 조카는 나와서 만날 빽빽 울고 오줌똥이나 싸면서 누워만 있다가 여러 달이 지나서야 겨우 기어 다녔다. 강아지들은 나와서 눈을 못 뜨고 꾸물대다가 여러 날이 지나야 눈을 뜨던데 송아지는 신통한 녀석들이었다. 나오자마자 제 어미 배 밑으로 들어가 젖을 무는 행동도 그 얼마나 재미있고 대견하던지.

 

 우리 소도 봄 되기 전에 송아지를 낳았다. 밤에 아버지 어머니가 한 숨도 못자고 들락거리는 걸 잠결에 들었다. 외양간에서 소의 울음소리도 먼 꿈결처럼 들렸고 외양간 나무바닥을 어지러이 박차는 소리도 들었다. 그렇게 온 식구들이 잠을 못 자고 크나큰 산고와 함께 비릊어 낳은 송아지는 한 집안의 축복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겨울햇빛이 따사로이 쏟아지고 아버지 표정도 행복해 보였다. 아버지는 우리가 송아지를 구경하는 걸 못 하게 했다. 누가 보면 어미가 새끼를 죽인다고 했다. 우리는 며칠을 궁금한 상태로 견디어야 했다.

 

 아버지가 이젠 송아지를 봐도 된다고 허락하기도 전에 먼저 송아지가 외양간을 나왔다. 거적을 밀고 빼꼼히 내다보던 녀석이 마당으로 나와 폴짝거렸다. 세상에 갓 나온 송아지만큼 귀여운 게 또 있을까. 강아지도 귀엽고 병아리도 귀엽고 우리 조카도 귀엽지만 송아지는 더 귀여웠다. 그 까맣게 초롱한 눈이며 앙증스런 다리. 어미가 밤낮으로 핥아서 매끄러운 털까지.

 

 송아지는 누가 뭐래도 내 아람치였다. 나는 녀석을 내 것으로 삼고 싶었다. 나는 여섯 살짜리 막내 아기였고 송아지도 아기였다. 그러니 우리는 동족이었다. 녀석이 커서 멍에를 질 때까지 많은 정을 주고받았다.

 

 농사철이라고 해서 소가 매일 일을 하진 않았다. 오히려 일을 하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날 소를 보는 것은 내 일이었다. 누나들은 학교엘 가고 한가한 사람은 나였다. 외양간에서 고삐를 풀어 들판으로 끌고가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꼬마가 하자는 대로 다 하는 참 순한 동물이 소였다. 풀이 풀부한 곳으로 데려가 풀을 뜯기고 물을 먹이고 밑둥 굵은 미루나무에 매어 놓으면 한가롭게 되새김질을 하며 귀찮게 달라붙는 쇠파리들을 이따금 꼬리로 휘저어 쫓곤 했다. 소나 나나 평화로운 시간들로 점철되는 것이다. 송아지는 신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노닐다가 배고프면 어미 곁으로 와서 젖을 빨았다. 어미와 새끼가 같이 낮잠을 자기도 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낫을 들고 나가 꼴을 베었다. 장갑이 없는 시절이라 맨손으로 잘도 베었다. 저녁나절이 되면 꼬마는 소를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아이들이 베어온 꼴이 쌓여 있다.

 사람은 밥을 먹고 소는 꼴을 먹는다. 소는 꼴값을 하는데 밥값을 못 하는 사람도 많다. 꼴을 생각할 때 늘 떠오르는 구절이다. 그래서 꼴깝한다는 욕이 생겨난 걸까.

 

 송아지 때부터 담뿍 정이 들어 동족 같은 송아지도 금세 몸집이 커지고 때가 되면 코뚜레를 꿰어야 한다. 비로소 고된 소의 일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코뚜레는 일을 시켜먹기 위해 아직은 야생성이 남아 있는 소를 길들이기 위한 구속이다. 아버지는 물푸레나무를 불에 구워 둥글게 코뚜레를 만들었다. 코를 꿰는 건 힘센 장정 두엇이 더 달려들어 소를 결박해야 한다. 어린 꼬마의 눈에 그것은 참혹한 광경이었다. 소는 겁에 질려 검은 왕방울눈을 부라리고 사내들은 무지막지하게 달려들어 코를 뚫었다. 비명도 못 지르고 대신 입에서 허연 침이 흘렀다. 이윽고 콧구멍에 코뚜레가 고정되고 피도 흘렀다. 더 이상은 송아지가 아니었다. 코뚜레에 고삐를 매면 녀석은 죽을 때까지 일만 하는 소가 되는 것이다.

 

  어미는 어느 날 사라지고 만다. 한 집에서 소는 두 마리 이상 필요가 없다. 소가 사라지는 걸 직접 눈으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어린 소견도 막연히 짐작은 하였다. 아직 건장한 소는 쇠전에 내다 팔거나, 대가 거의 다된 소는 푸줏간으로 간다는 것을. 꼬마는 그 이별이 너무 아프고 섧다. 송아지 때부터 함께 들과 산을 뛰놀던 소였다. 엄마가 죽는 것처럼 무서운 고통이다. 한동안 아이는 어둡고 습한 인생을 체험한다.

 

 묵묵히 고된 일만 하다가 쇠약해진 대가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고 악랄하며 이런 짓을 자행하는 인간들은 참 비열하다는 걸 어린 날에 절박하게 느꼈다. 지금은 도살도 법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니 가혹한 이별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결국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소들의 운명이라 생각하면 그리 마음이 좋지는 않다. 고기가 되기 위해서 사는 인생의 비참함이라니!!

 세상에서 제일 순하디 순한 소.

 

 정선의 벗밭은 요즘도 소로 갈이를 한다. 비탈이 심해 장비사용이 용이하지 않아서다. 그렇지 않은 바에야 이젠 농사는 다 기계로 하니 소갈이는 이제 이곳 정선만의 독특한 풍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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