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문에 대한

설리숲 2014. 8. 26. 12:50

 

 애옥살이 촌가들이지만 화단을 가꾸는 여유들은 있어서 집집이 마당 한 귀퉁이에는 꽃을 심었다. 꽃은 거기서 거기라 다 똑같았다. 채송화 봉숭아 금잔화 과꽃 백일홍 맨드라미 분꽃 나팔꽃 장다리꽃 해바라기. 채송화는 늘 맨 앞자리였고 장다리꽃이나 해바라기는 맨 뒤에 섰다. 여기다 각자의 취향대로 달리아를 심기도 했고 글라디올러스나 샐비어가 추가되기도 했다.

 

 이 꽃들은 관상용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증편을 찔 때면 꼭 맨드라미 꽃잎으로 떡을 장식했다. 물감을 들인 깨와 함께 붉은 맨드라미 꽃잎을 박은 증편은 먹기도 아깝게 아름다웠다.

 

 여름이 끝나면서 찬바람이 나면 문을 새로 발랐다. 안 해 가을 바른 문은 때가 타서 쪼록쪼록 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미어져서 가을이 오기 전에는 늘 새로 바르는 게 연중행사였다.

 아침 일찍 집안의 문이란 문은 죄다 떼어내어 낡은 종이를 떼고 밀가루를 풀어 풀을 쑤었다.

 어머니는 화단에 가서 이것저것 꽃잎을 따 놓았고 가까운 숲정이에서 나뭇잎도 따다 놓았다. 새 문을 바르되 절대 밋밋하게 하는 적이 없고 거기다 꽃잎이나 나뭇잎을 붙여 미적인 감각을 첨가했다.

 또 툇문에는 조그마한 눈곱재기를 붙였는데 이것은 방안에서 밖을 내다보기 위한 용도였다. 주로 아버지가 이 눈곱재기로 들고나는 손님들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새로 바른 문을 안팎에 널어놓으면 햇살 좋은 가을날 집안은 참으로 눈부시다. 손가락으로 튀기면 팽 하고 소리 날 정도 창호지는 말라 가고 겹붙인 꽃잎도 그 새뜻함이 더해 아름다웠다.

 그 화려하고 눈부신 날의 정경은 언제나 눈에 암암하다.

 

 잘 마른 문을 걷어다 다시 제자리에 걸고 문을 닫고 잠을 자는 첫 밤은 그 얼마나 포근하고 안온하던지. 깨끗한 창호지는 채광도 좋아 방은 한결 환해졌다. 기직 위를 기어가는 귀뚜라미 등에도 밝은 빛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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