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타작

설리숲 2015. 9. 23. 00:28

 

 벼 타작을 하면 한 해 농사가 끝난다. 물론 참깨 들깨도 있고 콩도 있고 김장 배추 무도 있지만 쌀이 식량인 이상 시골의 생의는 벼에 집중돼 있을 수밖에 없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모든 일을 품앗이했다. 품앗이할 만큼 소출이 많은 것도 아니다. 아끼고 아껴가면서 느루먹어도 이듬해 봄철에는 먹을 게 부족해 또 보릿고개를 넘기는 순환의 세월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수확은 기쁘고 풍성한 날이어서 아버지나 어머니나 품앗이 하러온 마을의 일꾼들 모두가 거늑한 표정이곤 했다. 가을은 이토록 여유로운 계절이었다. 비록 겨울 지나면 춘궁을 견디기 힘겨운 날들이 올 것을 알고는 있지만 방에다 쌀가마를 쌓아두는 심정이야 얼마나 흡족한가. 당장 갈 겨울은 굶지 않아도 되니까.

 

 

 해토머리가 되어 논바닥의 얼음이 녹으면 아버지는 쟁기를 준비하고 손을 보았다. 외양간의 소를 내어 멍에와 굴레를 얹고 쟁기를 달았다. 겨우내 소는 한층 살이 이져 있다. 사람도 사람이려니와 소도 고된 노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멍에와 굴레는 소에게 숙명이었다. 이러~ 마마~ 개울 건너 작은 논을 그루뒤는 아버지의 메나리소리가 들리고 소의 입에서는 하얗게 김이 뿜어져 나왔다.

 

 삼짇날 즈음 제비도 돌아오고 들판은 춘수만사택, 얼음이 녹고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으면 논에 물을 가득 채웠다. 이미 그 전에 비닐온실 안에 볍씨를 뿌려 모를 키우고 있었다.

 모가 자라면 드디어 논을 삶았다. 물 먹은 논바닥은 찰진 흙이 되어 모를 꽂기 좋게 부드러워진다. 논 삶는 날은 제비들도 잔칫날이다. 써레질을 하면 흙속의 각종 벌레들이 노출되므로 온 동네 제비들이 날아들어 논바닥을 차고 다녔다.

 

 모내는 날은 잔칫날이었다. 품앗이 일꾼들 먹이려면 아침부터 저녁 세 끼에 중간 제누리까지 해서 다섯 번을 음식을 내왔다. 방죽에 둘러앉아 먹는 기승밥은 시골 사람들 한 해 먹는 식사 중에 가장 고급이었다. 육고기는 감히 엄두를 못내고 고등어 꽁치 따위 생선을 굽고 콩나물무침에 김, 안해 가을에 말려두었던 각종 묵나물, 겨울을 넘긴 시어고부러진 짠지 등속들. 제누리는 국수가 나왔다. 멸치국물을 우려내 말아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도 불러다 국수를 멕이기도 했다. 그리고 반드시 마시는 막걸리.

 쌀이 다 떨어진 춘궁기에 어머니는 어떻게 마련했는지 하얀 이밥을 지어 내놓고는 했다. 웬만한 집에서는 그냥 조나 옥수수 보리가 들어간 잡곡밥이 보통이지만 허기진 장정들은 무엇 하나 맛없는 것이 없었다.

 

 사름이 내리고 벼가 커가면서 아버지는 늘 논에 서 살았다. 뭔놈의 피는 그리 극성인지 뽑고 뽑아도 논의 피는 늘 그대로였다. 거머리들이 발목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도 아랑곳없이 아버지는 늘 피를 뽑았고 시시때때로 멜통을 메고 약을 쳤다. 그 시절의 농약은 지독하게 독성이어서 사고가 빈번하게 있었다. 참 약지 못하게도 장갑은 고사하고 마스크 따위조차 없이 맨몸으로 맹독성 약을 쳐대니 사고로 쓰러져 죽는 사람도 있었고 하루 종일 일을 마치고 나면 제 몸 가누기 힘들어 저녁이면 밥도 못 먹고 그냥 나가떨어지곤 했다. 논배미도 다들 적은데 일은 뭐 그리도 많았는지.

 

 배동이 오르고 벼는 무럭무럭 익었다. 누렇게 고개를 숙이면 또다시 품앗이를 벌여 벼를 베고 역시 어머니는 하루 다섯 차례 밥과 막걸리를 내었다.

 

 논두렁마다 둑방마다 베어낸 벼를 널어놓으면 따가운 가을 햇볕이 내리쬐어 말렸다. 그리고 드디어 타작을 하는 것이다. 탈곡기는 동네에 한 대가 있어 온 농가가 돌아가며 빌려 썼다. 이른 새벽부터 돌아가는 탈곡기소리는 풍년가보다 더 흥감스러웠다.

 탈곡기가 없을 때에는 개상에다 볏단을 내리쳐 태질을 하였는데 이건 보통 힘든 노동이 아니었다. 떡대 좋은 젊은 장정들도 몇 번 내리치면 금세 기진맥진해졌다. 힘은 힘대로 들고 알곡도 완전히 떨어지는 게 아니어서 효율성은 전혀 젬병이었다. 기계가 없던 과거에는 다들 그렇게 살아왔다 하니 농사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말해 무엇하리.

 

 그렇게 한 해 뼈 빠지는 노동을 하고 얻은 수확물은 참으로 보잘 것 없었지만 그래도 농군들은 그 작은 것에 만족하고 잠깐은 보람을 느끼곤 했다. 이듬해 봄이면 또 다시 반복되는 고된 일상들. 그렇게 허리가 굽어가면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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