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도시에 먼저 온다.
산골은 생강나무만 겨우 꽃망울을 터트렸을 뿐 곳곳에 잔설이 남아 있는데 서울엔 백목련과 산수유들이 다투어 터지며 바야흐로 꽃잔치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맘때의 옷차림은 사계절을 다 통합한다. 발랄한 아가씨들은 화사하여 얇은 옷차림이고 대개의 사람들은 여전히 두꺼운 맨드리다. 어둠이 내리면 쌀쌀한 추위다. 옷 입기 애매한 나날이다.
예술의 전당.
시골 노인네가 택시를 잡아타고 ‘전설의 고향’으로 가자고 하면 기사가 알아서 데려다 준다는 ‘예술의 전당’이다.
두다멜과 LA필하모닉의 공연이 있었다. 전날 말러 음악에 이어 이날은 드보르작의 9번 교향곡을 하는 날이다.
사실은 레퍼토리는 드보르작과 함께 존 애덤스의 <시티 느와르>도 있었다. 따분하고 난해한 현대음악이다. 클래식마니아라도 현대음악은 그리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나 말고 다른 관객들 거의가 존 애덤스라는 이름은 물론이고 시티 느와르라는 곡을 생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재미없는 지루한 연주가 진행되고 이윽고 두다멜의 지휘봉이 허공에서 일순 멈췄다. 아! 연주가 끝난 건데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는다. 민망한 두다멜이 얼굴에 웃음을 띠고 스스로 박수를 치며 곡의 종료를 알리자 그제야 관객의 박수가 나온다. 연주자도 지휘자도 관객도 민망했겠지만 잘 알지 못하는 음악이니 뭐 대수롭진 않다.
그리고 대망의 신세계 교향곡이 연주되었다. 내 생애 두다멜과 LA필하모닉, 그리고 그들이 연주하는 신세계를 두 번 다시 들을 날 없을 것이다. 벅찬 환희와 감동.
앙코르곡으로는 역시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을 연주하였다. 봄의 절정으로 가는 그 밤의 분위기에 아주 적절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의 앙코르 연주까지도 다 끝났는데 박수는 계속 이어진다. 내 짐작으로는 한 20여분 박수가 계속된 것 같다. 단원들도 퇴장을 해야 하는데 박수가 끝나지 않으니 죽을 맛이겠다. 아니면 대성황에 기쁘고 뿌듯했을까.
도시의 밤이 깊어 있었다. City Noir였다.
드보르작 슬라브 무곡 Op.46 8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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