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모란 동백 그리고 이제하

설리숲 2015. 6. 21. 10:57

 

 가수 조영남은 자신의 장례식에 <모란 동백>이 흘렀으면 좋겠다는 일종의 유언을 했다. 아마 그의 바람대로 될 것이다.

 

 이 노래는 원곡이 이제하다.

 이제하가 누구인가. 우리가 소설가로 알고 있는 그 사람이다. 각종 문학상을 수상한 천재적인 작가다. 소년시절부터 문재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이미 고교시절에 시인으로써 수많은 팬을 확보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대학은 홍익 미대를 수학했다. 시 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전방위 예술가였다. 성인이 되어서는 소설을 썼다. 문학과 미술을 병행하는 특이한 삶을 살았다. 1974년에는 현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문학계의 천박한 행태들을 비난하며 수상을 거부했다.

 

 예술활동 이외에도 카페, 의상실 등을 운영하기도 하는 등 구애받지 않는 이력을 쌓기도 한다. 그 스스로 ‘나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아나키스트’라 하였다. 말 그대로 자유로운 영혼이다. ‘자유로운 영혼’이란 말은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가끔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말을 들을 때 참 기분이 좋다. 내가 그렇긴 한가?

 

 이제하는 또 음악에도 조예가 있어 <빈 들판>이란 타이틀의 음반을 발표했는데 이 음반에 실린 노래가 <김영랑, 조두남, 모란, 동백>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그가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조영남이 리메이크해서 크게 히트한 <모란 동백>이다. 조영남의 노래도 좋지만 이제하의 허스키한 목소리의 순수한 노래도 아주 매력적이다. 다만 경상도 발음이 그대로 들어 있어 일종의 옥의 티다.

 

 고교시절에 쓴 시에 문학적인 재능이 탁월하다.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보라빛 노을을 가슴에

  안았다고 해도 좋아

 

  혹은 하얀 햇빛 깔린

  어느 도서관 뒤뜰이라 해도 좋아

 

  당신의 깨끗한 손을 잡고

  아늑한 얘기가 하고 싶어

 

  아니 그냥

  당신의 그 맑은 눈을 들여다보며

  마구 눈물을 글썽이고 싶어

 

  아아 밀물처럼

  온몸을 스며 흐르는

  피곤하고 피곤한 그리움이여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 청솔 그늘에 앉아 -

 

 

 

 

 

 

 이제하의 글은 여태 하나도 읽어 보질 못하였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갑자기 읽고 싶어졌다. 자유로운 영혼이 써 내려 간 글은 과연 어떨까. 이름도 멋있고 외모도 기품 있다. 물론 지금은 노인네가 다 된 외모지만……

 

 

 평생 남의 노래로 먹고 살았던 조영남은 마지막 장례식까지도 남의 노래로 장식할 모양이다. 이 노래 아니었으면 <화개장터>가 울려 퍼질 뻔했다. 어쨌거나 조영남이 아니었으면 이제하의 노래는 세상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조영남 덕분에 저작료 수입도 있을 테니 둘 다 윈윈하는 셈이다.

 

 

 

 

 

 

 이제하 작사 작곡 노래 : 김영랑, 조두남, 모란,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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