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고택

설리숲 2015. 8. 15. 18:13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련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 덧 첫닭이 울고-- 뭇개가 짓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는 심지를 더우 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촛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이곳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으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내 몸에 피란 피-- 가슴의 샘이 말라 버린 듯 마음과 몸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내 침실이 부활의 동굴임을 내가 알련만------.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 나의 침실로 (1918)

 

 

 

 선생은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3년에 돌아가셨다.

 

 대구 계산동 이상화 선생의 고택을 돌아보다.

 

 

 

 

 

 

 

 

 

 

 여전히 세월호의 아픔은 고스란히 남아 일개 여염집 담장에서도 그 슬픔이 나부끼고 있다.

 

 

 

 

                            이상화 시 변규백 작곡 서울대 노래패 노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