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소록도

설리숲 2015. 7. 7. 01:05

 

 

   전라도길 - 소록도 가는 길에

 

                                         한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소록도는 전남 고흥반도 남쪽 끝에 자리한 넓이 4.42㎢의 섬이다. 뭍과 섬은 배로 고작 5분 거리지만, 둘을 잇는 것은 돈을 받고 사람을 건네주는 97t급 배 ‘도양호’와 국립소록도 병원에서 운영하는 ‘소록호’ 등을 합쳐 고작 3척뿐이다.

 “거리는 짧지만 물살이 세서 헤엄쳐 건널 수는 없다”

 소록도 사람들의 ‘천형’은 그들의 몸에 갑작스레 덮친 병이 아니라, 손에 잡힐 듯 ‘저만치’ 떨어져 있는 뭍의 모습이었다.

 

 1970년대까지 병을 발견한 한센병 환자들이 섬에 입원하려면 경전선이 잠시 쉬어가는 벌교역에서 내려야 했다. 그곳에서 환자와 가족들은 “문둥이를 태울 수 없다”는 버스 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다 지쳐 하루와 반나절을 꼬박 걸어 섬으로 향했다. 지금은 벌교에서 녹동항까지 넓직한 4차선 도로가 뚫렸지만, 그때만 해도 이 50km 길은 가도 가도 끝없는 붉은 황톳길이었다. ‘소록도 가는 길’이라는 부제가 붙은 한하운의 절창 <전라도길>은 한여름 그 지옥 같던 남도의 황톳길 위에서 탄생했다.

 

 

 

 

 

 사슴을 닮았다 하여 소록도(小鹿島)라 하였다. 이름은 예쁘지만 어느 한때 이곳은 홀로코스트 버금가는 잔악한 시절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그 이름만으로도 소록도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깊이 박혀 있다. ‘소록도는 곧 문둥이 수용소’다. 소록대교가 놓이기 전엔 그 누구도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는 섬이었다.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 갱생원에서 자행됐던 슈호 마사토 원장의 폭압과 그에 억눌려 신음하던 원생들의 실화를 그린 이야기다. 소설을 읽고는 큰 충격에 빠졌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비로소 섬엘 들어가게 되었다. 솔직히 다리를 건너가면서도 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다녀온 지금도 역시 그렇다. 어느 사물에 한번 박힌 개념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소록도는 관광지가 아니다. 섬이라야 워낙 작은데다 병원과 그에 딸린 부속건물 말고는 볼 것이 없다. 북쪽에 해수욕장이 하나 있긴 하지만 관광객이 많이 오는지는 모르겠다. 일제 때부터 있어온 근대식 건물이 군데군데 있을 뿐이다. 탐방객은 병원이 있는 중앙공원을 휘둘러보고 나오는 게 전부다.

 

 

 

 

 

       검시실

1935년 건립하여 한센 환자들의 시신을 해부했던 곳이다. 중앙공원 입구에 있으며 당시의 해부대를 고스란히 보관했다. 건물은 두 칸으로 나뉘어져 입구의 넓은 방은 해부실로, 안쪽의 방은 시신을 보관하는 영안실로 사용했다.

모든 사망자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해부를 당했으며 간단한 장례를 거쳐 섬 내 화장장에서 화장 후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그래서 한센인들은 세 번 죽는다고 했다. 발병, 해부, 화장...

 

 

 

 

 

 

 

 

 

 

            감금실

 1935년 건립하여 환자들을 구금 감식 체벌 등을 가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극악무도한 인권탄압의 상징물이다. H자 형태로 방은 전부다 철창이 설치되어 있고 각 방의 마룻바닥을 들어올리면 변기가 나온다. 모든 것이 형무소와 같은 구조물이다.

 환자들은 원장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변론의 기회도 없이 이곳에서 악랄한 탄압을 받았다.

 또한 감금실에 들어갔던 사람은 예외없이 정관절제수술을 당하고 풀려났다.

 

 

 

    단종대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 이동 (감금됐다 풀려나면서 강제단종수술을 받은 당시의 원생)

 

 

 

 

 

 

 

 

 1945년 해방이 되고 원생들은 자치권을 요구했다. 그러나 거부하는 반대파들에 의해 84명이 학살당하는 참극이 있었다. 치료 본관 앞 모래밭에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한군데 모아 장작을 쌓고 송탄유를 부어 불태웠다. 식민지 때도 광복 후에도 이곳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유형지였다.

 

 

 

 

 

 

 

 

 

 인간세는 얼마나 많은 업장들이 쌓여 있는가. 감당하지도 못할 이 목숨 틀어쥐고서 나는 무에 그리 집착하는 게 많은지 모르겠다. 내가 아닌, 나를 제외한 이 세상의 것들은 그저 먼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허황해 보인다. 그러나 치욕과 굴종은 사뭇 나를 따라다니며 검질기게 괴롭힌다. 나는 살아 있으되 사고를 하지 않는 인형이요 목내이다. 저들의 고통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나의 몸은 어찌 이리 부끄러운가. 한번 살아내면 썩어 문드러질 의미도 없는 이 몸뚱이. 유형의 섬 소록에도 똑같이 햇살은 쏟아지고 있었다.

 

 

 천형을 지고 숨가쁘게 토해낸 한하운 시를 다시 읽어 본다. 비로소 그 불운한 삶을 추모한다. 선생은 파랑새가 되었을까. 파랑새 되어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고 있을까.

 

 

                    한하운 금수현 작곡 팽재유 노래 :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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