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는 궁합이 잘 안 맞는다. 언제나 풍우가 오거나 풍랑이 일어 제때 들어가지를 못하곤 한다. 보길도는 세 번이나 갔건만 아직 한 번도 배를 타질 못했다. 울릉도. 비가 시작되기에 또? 했더니 역시 배가 뜨질 않았다. 묵호에서 하룻밤을 자고 배를 탔다.
일을 할 때는 휴일이 일요일 하루뿐이어서 어디 여행을 가도 그 밤에 돌아와야 하는 관념으로 늘 여유롭지 못했다. 일을 그만두고 떠나는 여행은 얼마나 안락한가. 질펀하게 놓여 있는 많은 시간들. 그러기에 하룻밤 아니라 며칠을 배를 못 탄들 조급할 리 없다. 풍우가 지나간 바다는 잔잔하고 여유로웠다. 바야흐로 봄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날은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꼭 1주년 되는 날이었다. 항구에서부터 해경 고속보트 2척이 내내 우리 배를 호위하듯 따라왔다. 우리 배를 대상으로 해상구조훈련을 할 예정이라고 여러 번의 선내방송이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나란히 달려 이윽고 경비함 한 척이 물을 뿜으며 대기하고 있는 곳에 이르러 훈련이 시작되었다. 30분 가량 바다 한가운데 멈춰 서서 그들의 훈련을 지켜보았다. 앞서간 청춘들을 생각한다. 그 어린 생명들은 우리가 죽였다. 그간 선진국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한국과 그 정부에 얼마나 실망하고 분노했던가. 내 생애 가장 참혹했던 그 역사는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여전히 그 아픔은 진행중이다.
청명하던 날씨가 변덕을 부리며 다시 바다에 비가 내렸다. 하늘과 바다가 짙은 회색으로 변했다.
저만치 항구가 보일 때쯤 선내에 <울릉도 트위스트> 노래가 흘러나왔다.
육지 손님 어서 와요 트위스트 나를 데려가세요.
봄이었다. 과연 울릉도는 나물 천지였다. 밥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마다 나물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다듬고 있었다. 여기도 나물 저기도 나물.
울릉도 여행의 경비는 보통 여행의 거의 두 배 정도 든다. 뭐든지 비싸다. 음식 값은 가장 싼 게 만 원이다. 이곡만의 특산음식은 홍합과 따개비로 만든 음식이다. 홍합밥, 따개비밥, 홍합칼국수, 따개비칼국수. 본토의 갯가에 가장 흔하지만 뭍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 따개비를 재료로 쓴다는 게 신선하다. 다 맛있다. 돈이 아깝지는 않다.
작은 섬이라 주민 수도 많지는 않다, 한 달만 살면 섬 내 전 주민들과 안면이 트일 것 같다. 도동과 저동, 그리고 천부 일대만 촌락이 있고 그 외는 한지다.
산은 온통 털머위, 고비, 명이나물로 뒤덮여 있었다. 명이나물은 산마늘의 다른 이름이다. 뭍에도 없는 건 아니지만 울릉도에서는 이걸 특산품으로 브랜드화 하였다.
<1박 2일> 방영으로 더욱 유명해진 행남해안로를 걸었다. 사실 이곳과 성인봉만 등반하다면 울릉도여행의 겉핥기는 마치는 셈이다.
털머위 군락
나리 분지
원래는 이틀 밤을 지내고 사흘째 되는 날 나올 요량이었다. 그 전날 다시 하늘이 어두워지며 섬에는 몹시 바람이 불었다. 나리분지를 넘어가는 고개에서 똑바로 서지 못할 정도의 강풍을 체험했다. 그러더니 또 비가 내렸다. 버스를 타고 도동으로 돌아오는 서해안 바다는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파도는 연해 길가로 몰아쳤으며 한번은 거대한 물보라가 버스에 달려들어 여자승객 몇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배는 뜨지 못했다
명이나물
고비
섬노루귀
너도밤나무 숲.
봄이 무르익었건만 성인봉엔 아직도 얼음이 깔려 있고 몹시 싸했다.
그래서 하루가 또 남는다. 예전에 한번 성인봉을 올랐기에 이번엔 예정에 두지 않았지만 하루가 남는 바람에 성인봉엘 올랐다. 겨울과 봄의 서정은 또 다르다. 나물들이 뒤덮여 있고 중턱부터는 뭍에서는 보기 힘든 섬노루귀가 지천이다.
오를수록 기온이 차다. 울창한 너도밤나무 숲에 그때까지도 허옇게 얼음이 얼어 있었다. 저 아래는 벚꽃이 흐드러지고 걷기에 땀이 흥건히 젖을 정도로 햇볕이 뜨거운데 이 좁은 섬이 등고선에 따라 날씨와 식생이 이렇듯 다양했다.
이미 강풍은 소멸됐고 싸늘하지만 강렬한 태양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하늘도 바다도 푸르고 잔잔했다.
다음 날 배는 유유하게 도동항을 떠났다.
황우루 작사 작곡 이시스터즈 노래 : 울릉도 트위스트
이 노래는 고 황우루 작사 황우루 작곡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은 임성환 씨가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임 씨는 지난 2007년에 저작권에 대한 소송을 했는데 너무 오래 전의 일이어서인지 법원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기사를 읽어 보면 임 씨의 주장이 논리 정연하여 그럴듯하다. <키다리 미스터김>이나 <서울의 아가씨> 등 당시 크게 히트했던 다른 노래들도 황우루 작사 임성환 작곡이지만 등재는 모두 황우루 작곡으로 되어 있다는 주장인데 내 사견은 억울한 상황인 것 같다.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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