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쯤에선 뭐든 다 보일 게야 저 구로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 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이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섰는 사람들 이마 위로 무심한 눈길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 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훠이~ 훠이훠이 훠이~ 훠이훠이
훠어어얼 훠어어어얼
서울의 6월. 마른장마다.
초목은 갈증 나는데 물대신 불청객 같은 메르스가 도시를 습격하고 있었다. 종로에도 지하철에도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보기만 해도 덥다.
메르스. 사망자도 발생하는 무서운 전염병이긴 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과도해 보인다. 중세 페스트의 재앙을 보는 듯하다.
그래봤자 감염률은 의심자를 포함해서 전 국민의 0.007% 정도이고 사망자는 전 국민의 0.00006% 정도로 아주 미약하다. 우리가 메르스의 피해를 입을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그런데 거리에 넘쳐나는 마스크를 보면서 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하루 교통사고 발생은 600여 건에 부상자는 800여 명, 사망자는 13~14명이니 이건 참말 엄청난 재앙인 셈인데 이 정도면 거리를 나다니거나 차타는 걸 공포스럽게 여겨야 하지만. 우리는 이런 교통사고에는 공포심도 경각심도 전혀 없이 무심하게 출퇴근하고 차를 몰고 다닌다. 오히려 장난운전이나 보복운전 등 위험천만한 일을 즐기기도(?) 한다. 음주운전은 기본이고.
예전에 다이옥신으로 인해 온 나라가 난리 친 적이 있었는데, 다이옥신을 그토록 공포스러워 하면서 담배연기는 그 다이옥신보다도 몇십 배의 폐해가 있는데도 흡연에 대해서는 아주 너그러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뭐 메르스를 대하는 자세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정작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은 도외시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안 됐다는 단상이다.
종로. 눈 내리는 겨울 밤새 걷고 싶다.
비 없는 장마철의 종로. 날은 무덥고, 허기진 생명들의 힘겨운 여름나기.
정태춘 작사 작곡 노래 : 92년 장마, 종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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