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에 살 때, 글을 쓰겠다고 날마다 밤새 습작을 끼적거리고는 일어나면 정오가 넘어 있곤 했었다. 어느 날 예외로 아침 일찍 깨어 맑은 정신으로 창문을 열었다. 7월의 첫날 아침이었다. 원룸 앞으로는 사천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 들판은 벼가 자라 새파란 융단을 깔아 놓은 것 같았다. 그 파란 풍경 안에 농로로 걸어가는 여학생의 새하얀 교복이 그 얼마나 싱그럽고 아름답던지!
순간 느껴지는 게 있었다. 이 원룸에 와서 1년이 다 되도록 이런 풍경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었다는 걸. 단지 창문만 열면 보이는 것인데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지 못하는 폐인으로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문학의 목적도 아름다움과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거늘 정작 있는 아름다움도 바라보지 못하는 황폐함으로 가득 찬 놈이 글을 쓴다고.
그래서 한동안 나는 습작을 하지 않았다.
내게 7월의 이미지는 언제나 그 새파란 들판의 아침 풍경이다.
7월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청포도의 그 7월...
어느 해 연분인가 만나지는 못해도 마음을 주고받는 있는 정인에게서 그런 문자가 왔다. 그렇군. 내 7월은 파란 들판인데 그의 7월은 이육사와 청포도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이육사 그리고 그의 7월.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이육사의 고향은 안동이지만 이 시 <청포도>의 고향은 포항 오천이다. 건강이 악화돼 포항 송도에 와서 휴양하는 동안 오천면 일대의 청포도 농장을 보고 시적 감응을 얻어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상화 윤동주와 함께 대표적 민족 시인인 육사는 이 시에서도 빼앗긴 조국과 암울한 현실을 아프게 그리고 있다. 아름다운 낭만시인 것 같으나 그래서 더욱 애절하고 비감하게 다가온다.
호미곶에 있는 시비
동해면사무소 앞에 있는 시비
당시는 영일군 오천면이었던 이곳은 청포도 농장이 많았었다 하는데 지금은 해병대 사단과 제철공장의 협력업체들이 들어서 있어 예전의 전원풍경은 전혀 없다. 오천읍은 지금은 웬만한 소도시보다도 더 큰 읍이 되어 있다.
이육사 시비는 여러 곳에 있다. 호미곶 바닷가에 청포도 시비가 있고, 동해면사무소 앞에도 청포도 시비가 있다.
호미곶으로 가는 영일만 해안도로 길섶에는 모감주나무가 지천이다. 마침 개화기여서 노란 꽃잎들이 가로등처럼 길을 밝혀 주는 듯하다.
영일군이 포항시로 통폐합되면서 청림동도 생겼다. 이름은 푸른 숲(靑林)이지만 공장지대라 이름과는 전혀 딴판이다. 그래도 육사의 숨결을 간직하려는 애틋한 마음이 있어 길거리엔 가로수 대신에 청포도를 심어 놓았다. 과연 7월이라 주저리주저리 포도알이 익기 시작했다.
그의 고향 안동 도산면으로 갔다. 이육사는 이황의 후손이다. 안동시는 도산서원이 있는 지역을 하나의 테마로 조성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도산서원에서 3km 정도 더 들어가면 이육사문학관이 있다. 그의 생가터가 남아 있는 마을이다.
그러나 헛고생이었다. 이육사문학관은 현재 공사중이다. 내년 3월 1일 에 다시 개관한다고 한다. 그냥 돌아나오기 서운해 그가 보고 자랐을 마을 앞 들판을 찍어 보았다. 내 7월의 이미지로 박혀 있는 사천 들판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온화한 강마을의 소박한 정취가 있다. 사진엔 안 보이지만 들판 저 쪽에 낙동강이 흘러 지나가고 있다.
내년 이후에 또 갈까 어쩔까.
이육사 시 이종록 작곡 김미성 노래 : 청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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